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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시기 한중관계의 변화과정

The Transformation of Korea-China Relations in Moder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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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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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시기의 한중관계는 이중적 국제질서 시기, 조공체제 붕괴 이후 과도적 시기, 한중간의 근대조약체결 시기, ‘외교권 박탈’ 이후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강화도조약으로 근대조약체제에 편입된 이후에도 한국은 중국과 조공체제를 유지하여 이중적 국제질서 하에 놓이게 되었다. 1882년 9월에 체결된 조청수륙무역장정이 체결되고 종주권을 지키려는 중국의 압력이 강화되었다. 이에 고종이 러시아를 끌어들이려 했다는 한러밀약설이 한국역사학계에서 정설로 인정받고 있지만 명확한 근거가 없다. 오히려 고종은 권력유지를 위해 중국에 의존적이었고 이는 한중관계에서 조공체제가 유지하는 한 요인이 되었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군이 중국공관을 공략하고 중국 외교관이 철수하자 한중외교관계는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과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중국은 한국 내의 중국인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인과 관련한 모든 교섭안건을 영국에 위탁했다. 중국은 외교관계를 재정립하면서 조공체제로 회귀하고자 했지만 중국인 보호라는 현실적인 문제로 근대조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했다. 1899년 9월에 한국과 중국은 한청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 한청통상조약 체결 과정에서 치외법권 문제는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루었으나 한성개잔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은 열띤 공방전을 펼쳤다. 그런데 조약체결을 우선시한 한국이 이 문제를 양보함으로써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한청통상조약 체결 이후 국경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중국은 국경분쟁을 해결하는 데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여 일정한 합의를 이루기도 했다. ‘을사보호조약’ 이후 한국의 외교권이 일본에 넘어가면서 중국총영사는 통감부로부터 한국 내 중국거류지에 대한 법적 지위를 부여 받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한국병합으로 근대시기의 한중관계가 종말을 고하면서 중국거류지도 철폐될 수밖에 없었다.

Abstract

In September 1882, when the Korea-China Regulations for Maritime and Overland Trade was concluded, Sino-Korean relations marked a new turn. It has been widely accepted in the community of Korean historians that there had been a Korean-Russian Secret Agreement when China escalated its pressure over Korea to keep its suzerainty, yet there was no definite evidence for its existence. Rather, King Gojong has been confirmed to have been dependent on China. After the Korea-China Regulations for Maritime and Overland Trade was concluded, many Chinese nationals visited Korea and, relative to an increase in their contacts, the number of conflicts between them has sharply risen. Korea-China diplomatic relations were temporarily suspended after the Sino-Japanese War when the Japanese army attacked the Chinese diplomatic mission in Korea and Chinese diplomats left Korea. China entrusted all negotiation authority regarding Chinese nationals to the United Kingdom in order to protect its people in Korea. China sought to restore the tributary system, but the practical issues of protecting its people made it sign the China-Korea Treaty of Commerce in 1899. In the process of concluding the treaty, Korea and China engaged in fierce negotiations over the abolition of ‘trade in Seoul’, but Korea, prioritizing the treaty’s early conclusion, could not help but make a concession. After the conclusion of the treaty, Korea-China relations entered a new phase amidst an intensifying border dispute. As China took a proactive position in solving the border conflicts, they could reach a partial agreement. After the Protectorate Treaty between Korea and Japan was concluded in 1905, Korea lost all diplomatic authority and the Chinese consul general tried to secure a legal status over the Chinese settlement in Korea. However, Korea-China relations were brought to an end when Japan forcibly annexed Korea, and the Chinese settlement had to be abo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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