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길준의 일본 망명과 귀국 과정
Yu Kil-chun's exile in Japan and the processof returning to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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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국에서 망명은 개항 이후 정치사의 전개 속에서 재탄생한 개념이다. 본 논문에서는 한국 근대 망명의 발생과 진행, 종식의 과정을 유길준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았다. 유길준은 1896년 2월 아관파천으로 인해 실각하였고 역모 혐의를 받으면서 국내에서 약 2개월 간 은닉 생활을 했다. 하지만 정계 복귀 가능성이 묘연해지자 그해 4월 일본 도쿄로 망명하였다. 그는 일본에서 후쿠자와 유키치와 일본정부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았고, 일본 내 체류 중이던 한국인 망명자, 유학생 등과 교류하였다. 한국인 망명자들이 한국 내정 개혁을 통한 정계 복귀를 도모하는 가운데, 유길준 역시 한국 내정 개혁 계획을 세웠다. 유길준은 고종의 측근을 제거할 것과 정부 개조를 내용으로 하는 정변을 모의하였고, 일본에서 정변 자금을 모집하였다. 하지만 정변 모의는 실행에 옮겨지지 못한 채 발각되었고 이를 계기로 유길준은 일본 내 원격지 섬으로 강제 이주 되었다. 이후 일본의 한국 ‘보호국화’가 확정되면서 일본정부가 한국인 망명자들의 귀국을 추진하였지만 고종은 유길준을 비롯한 일부 망명자들이 을미사변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이유로 사면과 귀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1907년 8월 고종 강제 퇴위 후 유길준은 귀국하였고, 그의 사면 문제를 둘러싸고 일본 측과 순종이 치열하게 대립하였다. 그 결과 일본 측의 요구가 일방적으로 관철되어 유길준은 사면되었다. 결국 유길준의 11년 동안의 망명생활은 일본의 정치적 우위를 통해 종식되었고, 이는 유길준의 귀국 후 행보에 제약으로 작용하였다.
Abstract
In Korea, exile is a concept reborn in the development of political history after the port was opened. In this study, the process of development, progression, and ending of the modern Korean exile was examined through Yu Kil-chun. In 1896, Yu Kil-chun who had been an interior minister was dismissed due to King Gojong’s Move to the Russian Legation (1896), and he was concealed in Korea for about two months while being accused of being rebellious. However, when the possibility of his return to politics became unclear, he exiled to Tokyo, Japan in April of that year. In Japan, he received financial support from Fukuzawa Yukichi and the Japanese government, and he interacted with Korean exiles and international students who were staying in Japan. As Korean exiles seek to return to the political world through the reform of the Korean internal affairs, Yu Kil-chun also formulated a plan to reform Korean internal affairs. Yu Kil-chun conceived a confrontation with the content of the removal of King Gojong's entourage and government reform, and raised money in Japan. However, his plot of political change was discovered without being carried out, and with this opportunity, Yu Kil-chun was forced to move to a remote island in Japan to live. After Japan's Plot of Protectorate of Korea was decided, the Japanese government promoted the return of Korean exiles, but King Gojong refused to grant pardons and return home for allegations that Yu Kil-chun and other exiles had participated in the Japanese Brutal Assassination of Korea Empress Myeongseong (1895). In August 1907, after the forced abdication of King Gojong, Yu Kil-chun returned to Korea, and over the issue of his amnesty, the Japanese side and King Sunjong were fiercely opposed. As a result, Japan's request was unilaterally fulfilled, and Yu Kil-chun was pardoned. In the end, it can be said that Yu Kil-chun's 11 years of exile life ended through Japanese political domin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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