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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辰倭亂期 일본사료연구—풍신수길의 조선침략관련 사료를 중심으로—

Research on Japanese Historical Data of the Period of Imjinwaeran—Focused on Historical Sources Related to Toyotomi Hideyosi's Invasion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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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 연구에서는 임진왜란기에 豊臣秀吉의 조선침략과 관련된 일본의 기초사료를 소개하였다. 이 시기의 사료는 그 양이 방대하고 지역자료도 풍부함으로 여기서는 이들 사료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후일로 미루고, 먼저 사료의 종류 및 특징과 내용, 그리고 이들 사료의 가치 및 이용방법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언급하였다. 일본사료 중 가장 일반적이며 기초적인 사료로서, 첫째로, 『大日本古文書』, 『大日本史料』, 『大日本古記錄』, 『改定史籍集覽』, 『群書類從』, 『續群書類從』, 『續々群書類從』, 『史料纂集』을 들 수 있다. 특히 『大日本古文書』에는 武家文書가 집중되어 있고, 秀吉이 발급한 문서가 가장 잘 정리되어 있다. 둘째로, 일기종류가 있다. 단 이 시기 일본의 경우에는 ① 전쟁 초기의 戰況을 알려주는 從軍僧의 일기 ② 전쟁 중 여러 大名의 가신단으로 종군하면서 남긴 일기 ③ 일본국내 사정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이 시기의 전쟁내용을 기록한 일기 등 3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西征日記」, 「吉見元賴朝鮮日記」, 「義演准后日記」 등이 대표적이다. 셋째로, 覺書와 편찬물을 들 수 있다. 각서와 일기는 戰況에 관한 것 뿐 아니라 조선에서의 세세하고 생생한 상황이 기록되어 있어, 武家文書와 같은 書狀에서는 알 수 없는 일상적인 정보까지 접할 수 있어서 그 사료적인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편찬물의 경우 일본의 경우에는 『朝鮮王朝實錄』, 『明實錄』과 같이 국가 주도로 만드는 편찬물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 밖에도 임진왜란과 관련된 일본측의 자료를 정리하다보면 일본의 縣과 市가 중심이 되어서 자료를 수집하고 활자화 하는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즉 전쟁 기간 중에 西國지역의 대다수 大名이 동원되었기 때문에 九州지역의 縣史에 다수의 자료가 집중되어 있다. 예를 들어 『佐賀縣史料集成』, 『熊本縣史料 5』, 『福岡縣史』 등을 들 수 있다. 임진왜란에 대한 한중일 삼국의 기존연구는 대체로 자국의 국내문헌을 위주로 진행되었고, 전쟁 상대편의 사료나 관계문헌에 대한 연구는 소홀히 취급되어 왔다. 이처럼 한·중·일 3국이 자국사의 틀 속에서 각자 이 전쟁을 이해하고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하였기 때문에 전쟁 상황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편향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연구 틀의 한계를 극복하고 객관적 시각 하에 임진왜란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방법으로 본 연구에서는 일본측의 사료를 소개하여 엄밀하고 객관적 사실을 재구성하는 기초작업으로 삼고자 하였다.

Abstract

In this search I introduce Japanese basic historical sources related to Toyotomi Hideyosi’s invasion of Korea during the period of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 in 1592. Because the amount of data is huge in this period and regional source is abundant, here I postponed the main research and stated generally about the kinds, characteristics, content, the value, and the way to use these historical data. Among Japanese historical data, as the most general and basic source, firstly 『Dae Nihonn Komonnzyo(大日本古文書)』, 『Dai Nihonsssiryou(大日本史料)』, 『Dai nihonnkokiroku(大日本古記錄)』, 『Kaite Siseki Syuurann(改定史籍集覽)』, 『Gunnsyo Ruizyuu(群書類從)』, 『Zoku Gunnsyo Ruizyuu(續群書類從)』, 『Zokuzoku Gunnsyo Ruizyuu(續々群書類從)』, 『Siryou Sannsyuu(史料纂集)』 is stated. Especially in 『Dai Nionn Komonnzyo』 there are so many ‘buke monnzyos(武家文書)’ and documents issued by Hideyosi are arranged most. Secondly, there are journals. However I can classify them to three kinds, (1) Journals of monks who attended the war show the early situation of war, (2) Journals by several lord group of manor who attended war, (3) Journals recording the war during this period recording the Japanese national circumstances. 『Seisei Nikki(西征日記)』, 『Yosimi Motoyori Tyousennikki(吉見元賴朝鮮日記』, 『Gienn Zyugouninnki(義演准后日記)』 are typical. Thirdly, there are Oboe Gaki(覺書) and compilations. Oboe gaki and journals recorded about not only the situation of the war but also detail and vivid situations in Korea, so we can obtain the general information we can not get from the documents such as Buke monnzyo. They are so valuable historically. In case of compilations, in Japan they have the characteristic that there are no compilations made by the initiative of government like 『Korea Dynasty Authentic Records』, 『Myung Authentic Records』. we can also know that ‘kens’ and ‘cities’ collect data and make them printed a lot when we arrange Japanese materials related to Imjinwaeran. That is, because during the war a lot of Daimyungs in west country were mobilized, abundant data are centralized in ‘Kennsi’ in Kyuusyuu. For example, there are『Sagakenn siryousyuusei(佐賀縣史料集成)』, 『Kumamotokenn siryou(熊本縣史料)5』, 『Hukuoka kkennsi(福岡縣史)』. Korea, China, and Japan’s research on Imjinwaeran has been performed by the data in their own country so far, historical data and related documents in opponent country have been treated indifferently. Because like this Korea, China and Japan have understood the war in the frame of their own history and interpreted it by the point of view of nationalism, their historical evaluation about the war situation are nothing but biased. To overcome the limit of such research frame and understand properly the history of Imjinwaeran under the objective viewpoint, in this study I intend to introduce Japanese historical data and make them basic work of reconstruction of precise and objective sou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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