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錦南 崔溥의 <耽羅詩 三十五絶> 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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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이 글은 조선 전기 때의 인물 錦南 崔溥(1454-1504)의 <耽羅詩三十五絶>를 조명한 것이다. 崔溥는 佔畢齋 金宗直의 문인으로 士林의 맥을 이은 호남의 士林의 윗자리를 차지하는 분으로 어려서부터 기질이 남다르고 강직하고 올곧은 성품을 지녔다. 당시 燕山君의 폭정과 勳舊派의 專橫을 좌시하지 않았으며, 선비로서 비판의 칼을 늦추지 않았던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잇다른 士禍에 연루되어 甲子士禍 때 결국 51세의 나이로 희생되고 말았다. 崔溥의 문집『錦南集』에는 <耽羅詩三十五絶>이 전하지 않는다. 다행히 淸陰 金尙憲이 지은 『南槎錄』에 <耽羅詩三十五絶>과 序이가 전하고 있어 崔溥의 詩的인 면모를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이 작품은 1487년 11월 推刷敬差官이라는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제주땅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어 그곳에 머무른 석달 남짓한 동안에 제주의 역사와 풍물을 압축하여 한 편의 대서사시로 엮어낸 것이다. 이는 崔溥의 박물학적인 지식이 총동원된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토록 짧은 기간 내에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東國輿地勝覽』을 增補하는 작업을 맡았을 때 제주의 물산과 풍속을 소문과 문헌자료에만 의존하여 기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다가 때마침 추쇄경차관이라는 제주를 경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崔溥의 <耽羅詩三十五絶>은 서사시적 구조를 띠고 있다. 일반적으로 개인적인 감정을 토로하기 보다는 제주의 자연풍경과 탄생전설, 그리고 역사와 풍물 등을 객관적 사실을 토대로 하여 제주 전반에 걸친 일종의 장편서사시로 분류할 수 있다. 崔溥의 서사적 경향은 그가 과거에 1485년에 『東國通鑑』을, 1486년 『新增東國輿地勝覽』을 편찬했던 경험에서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역사서와 지리지는 사실관계를 밝혀내는 것이 중요한 작업이다. 갖가지 사실을 검토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崔溥는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능력을 키워나갔을 것이다. 이는 經世濟民에 강한 포부와 의지를 가졌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Abstract

这是评说朝鲜前期人物錦南崔溥(1454~1504)的<耽羅詩三十五絶>。崔溥是佔畢齋金宗直的文人,居于继承士林的湖南士林的上层阶级的他, 从小就负有非凡的气质,刚直及清廉的品德。当时没有旁观燕山君的暴政和勳舊派的專橫, 作为书生没有延迟批判的实践知识分子。但是连续被士禍牵连,最终在甲子士禍时以51岁的年龄牺牲。崔溥的文集《錦南集》里没有传下来 <耽羅詩三十五絶>。好在淸陰 金尙憲写的《南槎錄》里传下来〈耽羅詩三十五絶〉和序,可以察看崔溥詩的面貌。这作品是1487年11月,为了执行推刷敬差官职务第一次迈步济州岛,在济州岛迁留的3个月左右把济州岛的历史和风物压缩编成一篇大书史诗。不可置疑,这是崔溥动用了所有的博物学知识的结果。在如此短暂的时间内可以做到的理由是他被负责担任《東國輿地勝覽》的增補工作时,对只能记录依照济州产物和风俗的传闻及文献资料的现实环境感到可惜时,恰好有绝好机会可以体验推刷敬差官的济州。崔溥的 〈耽羅詩三十五絶〉具有叙述诗的结构。抒发个人情感的较少,一般是以济州的自然风景和诞生神话、历史、风景等客观事实为基础, 描写济州的整体的可分类为一种长篇叙述诗。觉得崔溥的叙述风格应该与他在1485年编撰《東國通鑑》、1486年编撰《新增東國輿地勝覽》等获得的经验有密切的关系。历史册和地理记,最终要的工作是表明其事实关系。通过检讨和确认各种事实的过程,崔溥培养了客观能力和分析能力。正是因有对經世濟民具有强大的抱负和意志, 才得以形成

참고문헌 (10)

  1. 崔 溥, "錦南集", ~
  2. 金尙憲, "南槎錄", ~
  3. 李元鎭, "耽羅志", ~
  4. 李 增, "南槎日錄", ~
  5. 許 筠, "國朝詩刪", ~
  6. "朝鮮王朝實錄-成宗", ~
  7. 이종범, "사림열전1" (2006), 아침이슬
  8. 金禧東, "國譯 南槎錄" (1992), 영가문화원
  9. 강창룡, "역주 탐라지" (2002), 도서출판 푸른역사
  10. 김세곤, "호남정신의 뿌리를 찾아서" (2010), 온세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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