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命膺과 趙嚴, 두 실학자의 백두산기행 - 「遊白頭山記」
Bakdu Mt. Travel of Two Silhak Scholars, Seo Myeong-eung and Jo Eom; 「Yubakdusangi (遊白頭山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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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서명응과 조엄은 1766년 6월에 조선의 북쪽 변방, 현재 중국과의 국경선이 되는 백두산에 함께 올랐다. 그리고 이 산행의 동기와 일정, 행적과 감회를 적어 「유백두산기」라는 기행문을 남겼다. 또 서명응은 이 글과는 별도로 한시를 남겨 백두산 기행의 감동을 전하고 있다. 본고는 그 내용과 관련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두 사람의 백두산 기행과 「유백두산기」의 의의에 대해 살펴 본 것이다. 그 내용을 정리해보면, 두 사람은 같은 사안으로 인해 북쪽 변방으로 유배를 갔고, 이 과정에서 의기투합하여 함께 백두산을 오르기로 하였다. 그리고 백두산의 정상에 올라서 그곳에 세워져 있던 백두산정계비(1712년 청과 조선의 국경선을 확정하여 기록한 비석)를 살펴보았다. 이 대목에서는 백두산에 국경선이 그어지게 된 경위를 자세히 기록하고, 그 과정에서 조선이 잃어버린 땅에 대한 아쉬움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또 두 사람은 백두산을 등반하는 도중에 3군데 지점에서 북극고도(위도)를 측정하였는데, 이를 통해 조선의 자연지리적 환경을 지역별로 구분하여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상을 보면, 「유백두산기」는 당시 조선인들의 영토 인식과 자연 지식을 잘 보여주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북극고도 측정이라는 과제는 이후 서명응의 아들과 손자, 일부 학자들에게 계승되어 지속적으로 시도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두 사람의 백두산 기행은 단순히 자국의 영토를 미적 대상으로 탐색하는데 그치지 않고, 국토의 자연지리적 환경을 과학적으로 파악하고, 그 지식을 국가 경영과 농업 현장에 반영하려는 행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Abstract
In the June of 1766, Seo Myeong-eung (徐命膺) and Jo Eom (趙嚴) climbed together Bakdu Mt. in northern Joseon, present Korea-Sino border. They wrote travel essasy 「Yubakdusangi (遊白頭山記)」 recording the motives, schedules, activities and emotions of the climbing. Seo left the impression of that travel also in his other poem. This paper examined 「Yubakdusangi」 and related material to find out the meaning of two scholars' Bakdu Mt. travel and the essay. Two men were banished to the northen frontier by same issue and decided to climb Bakdu Mt. from mutual understanding. On the top of the mountain, they considered border-fixing monument that was set in 1712 to fix the Joseon-Qing border. In that passage, they recorded how the border was fixed and expressed deep frustration for the land Joseon lost in the border fixing. Also, they measured latitudes at three points during the climbing to understand the physiographic environment of Joseon by regional groups. 「Yubakdusangi」 can be the record that shows well the territorial perception and natural knowledge of Joseon peoples in those days. Especially, it was found that latitude were measured consistently in the later generations by Seo‘s son and grandson and other scholars. In that point, two men's mountain travel was not a simple aesthetic search on domestic territory, but was an activity to understand the physiographic environment of nation's territory and reflect such knowledge in national man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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