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皐 金履萬의 寺庵 탐방과 불교인식
Buddhist Temple Visits and Awareness on Buddhism Held by Kim Ee-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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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향리인 제천에서 출생한 김이만은 18세기 초·중반을 주요 활동기로 삼았던 남인계 관인·유자였다. 김이만의 선대는 예천이 세거지였는데, 이 지역의 망족에 해당하는 유서 깊은 가문이었다. 유학적 전통이 깊은 집안의 후예였던 김이만은 어릴 적부터 문한·필묵의 세계에 노닐었고, 수학기를 거치면서 유자적 정체성이 확고히 형성되기에 이른다. 차후 김이만은 비교적 늦은 나이(31세)에 과거 급제한 이후로 “通籍 50여 년에 이르는” 긴 사환기로 진입하게 된다. 그러나 노론계 일당 체제가 공고화되던 시기였던 탓에, 김이만은 외직과 한직을 전전하는 환력을 보여 주었다. 때문에 남인계 당인 김이만은 큰 정치적 피해의식과 그에 따른 좌절감을 줄곧 감내해야만 했다. 김이만이 중년 이후 무렵부터 전국의 명산·대첩을 찾아 원유에 나섰거나, 혹은 문학 활동에 더욱 주력했던 이유 또한 그가 떠안은 트라우마를 해소·치유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다. 동시에 이 지점에서 애초 근본 유자였던 김이만은 불교와도 부분 교섭하게 되면서, 새로운 사상적 실험의 장으로 인도되는 국면을 맞이한다. 한편 <산사>를 위시한 각종 유기류의 저술에는 김이만이 전국을 유람할 적에 탐방했던 숱한 사찰·암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김이만의 경우 사암을 탐방했던 횟수에 비례하여 불교교학과 수행법에 대한 이해도 동시에 심화되는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그가 남긴 유기류의 저술에는 불교 승단·승려에 대한 인식, 그리고 사찰과 결부된 다양한 이면사들도 아울러 묘사되어 있다. 특히 김이만은 환·공관에 입각한 해체론적 인식론을 수용하면서 기존에 추구했던 세속적 가치·대상들을 무화시켰을 뿐만아니라, 또한 시간 개념에 수반되는 영원성을 탈각시키는 등의 주목할 만한 인식론적반전을 수행하기도 했다. 겸하여 김이만은 참선·가부좌에 상응하는 정좌 수행에 몰입하기도 했다. 그럼과 동시에 김이만은 소동파의 시에서 풍겨나는 선적 기미를 강한어조로 비판했고, 인과응보설이 허무맹랑한 교리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하는 등의 이중적 태도를 표출하였다
Abstract
Kim Ee-man was a Confucian scholar and government officer belonging to the Namin School (南人系) during the middle and late 18th century. Since the Noron School (老論系) was reinforcing their political hegemony on Joseon (朝鮮) society at the time, Kim Ee-man had to adjust his life direction to accommodate the ripple effect of political party strife. Kim Ee-man traveled famous mountains and scenic spots since his middle age while devoting his time on poetry and prose composition; because he wanted to relieve the political victim mentality and the accompanying trauma he should undertake as a government officer belonging to Namin School. As Kim Ee-man toured whole country, he visited many Buddhist temples and hermitages. He naturally became to have deep understanding in Buddhistpriesthoodcommunity (僧團), Buddhist monks and Buddhist teaching system. Of course, since Kim Ee-man was an essential Confucian, he regarded Buddhism as a heresy and strongly criticized the unproductiveness and consumptive propensity of Buddhist priesthood community and denied the punitive justice theory (因果應報說), which is a representative Buddhist dogma. However, Kim Ee-man also introduced a perspective, in which the substantiality of secular fame, wealth and high position is extricated based on the ‘fantasy and empty perception’ (幻·空觀), which is the framework in Buddhist deconstructionism. Kim Ee-man also cognized eternity (永遠性)accompanying temporality (時間性) as disjoints (分節) and practiced Buddhist asceticism in person. These facts imply that Kim Ee-man received healing on his trauma from Buddhism though he had ambivalent attitude toward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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