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후반 정조대 ‘元子’의 탄생과 胎室의 조성 -『胎峯謄錄』과 『元子阿只氏安胎謄錄』을 중심으로-
The Birth of King JeongJo's Wonja(元子) and the Setting Up Taesil(胎室) in the Late 18th Century Joseon.
0
조회
0
다운로드
7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 글은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조선후기 원자의 탄생을 가족사적 측면에서 고찰하고, 원자의 장태의례와 태실조성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를 밝히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숙종이 원자로 탄생한 이후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후반까지 약 100년 동안 이루어진 왕가의 계승방식과 그 특징을 이해하고, 원자의 장태의례와 태실조성 방식이 다른 왕자녀들과 어떠한 방식으로 구별되는지 드러내고자 하였다. 특히 18세기 후반이후 왕실에서 1790년 원자의 탄생을 ‘庚戌大慶’이라고 일컬었던 사실에 주목하여, 정조대 원자탄생과 태실조성을 구체적인 사례로 살펴보았다. 먼저 정조대 왕위계승권자인 원자의 탄생과 죽음의 의미를 18세기 왕실의 가족사적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17세기 이후 조선 사회에서 적장자를 통한 家의 계승이 이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강하게 등장하였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조선 후기 왕실에서는 숙종대부터 정조대까지 왕비 소생의 원자가 태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숙종, 영조, 정조대에 왕위계승권자인 원자의 탄생과 국가의 영속성은 예외 없이 후궁의 출산을 통해서 어렵게 유지되었다.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후반까지 왕실가족사에 나타난 서장자를 통한 왕가의 계승이라는 특징적 요소는 정조대 원자의 탄생 사례에서 보다 두드러진다. 왕자녀의 출생 후 왕자녀의 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치러지는 장태의례와 태실의 조성은 모든 왕의 자녀들에게 예외 없이 행해졌다. 하지만, 특별히 왕위계승권자인 원자와 그의 태는 두 가지 주요한 의례요소를 통하여 다른 왕자녀들과 구별되었다. 그리고 왕위계승권자인 원자의 탄생은 장태의례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최초로 가시화되며, 태실이라는 왕가의 영속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로서 백성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장태의례와 태실의 조성과정은 왕의 자녀 가운데 왕위계승자인 원자와 그의 태를 상징화하는 최초의 의례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그리고 그 과정은 등록과 의궤의 형태로 기록되어 남겨져서 상세히 고찰할 수 있다. 정조는 영조의 ‘태봉윤음’과 태봉에 관한 ‘수교’를 의식하면서도, 원자의 태가 가지는 상징성을 정조 나름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였다. 특히 정조의 ‘태’에 대한 관념과 ‘태실’의 조성에 대한 태도를 장태의례와 태실조성 과정에서 내린 정조의 전교를 통해 파악하고자 하였다. 정조는 원자의 태를 1등 태봉에 묻고, 태실을 조성하는 것은 법전에 나와 있는 바이고, 또한 국운을 장구하기를 비는 뜻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였다. 하지만, 태항아리 하나를 간수하기 위하여 ‘민폐’를 끼칠 수 없다는 생각은 영조와 동일하였다. 따라서 예조와 관상감에 소속된 의례담당자에게 민폐를 가장 적게 끼치는 방식을 강구하도록 하였으며, 직접 방법을 강구하여 따르도록 구체적으로 지시하기도 하였다. 결론적으로, 정조는 두 번에 걸친 원자의 태실조성과정에서 장태의례의 의미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태실조성에 드는 인력과 물력을 축소시킴으로써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또한 보일 수 있었다. 즉 의례의 규모를 축소하는 대신 의례의 의미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데로 나아갔다. 이는 첫 번째 원자(문효세자)가 죽고, 다시 태어난 원자(순조)의 태를 1790년에 충청도 보은에 묻을 때 내린 정조의 전교에서 가장 잘 드러나며, 그 때 사용된 축문의 내용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Abstract
This article tries to reveal a couple of historical facts and their meanings. In the royal family of Joseon Dynasty, what was the reality of 'the burial of placenta'(藏胎) as a ritual? How were 'the placenta chamber'(胎室) set up? This is all achieved by looking into the life of the king JeongJo and his family. Expecially, I focus on the birth and death of the king's 'eldest son'(元子) among his children. Since the 17th century, it was considered to be ideal that the oldest legitimate son succeed to the family. So, in the case of the royal family, the social status of Wonja(元子) needed to be separated from those of other siblings through rituals in the family order. After birth, the king's children went through a variety of rites of passage in their lifetime. But Wonja(元子) as a successor to the throne took a different way from the others' ones. It is the burial of placenta that was the starting point. This was publicly announced all across the country and was 'seen' by people in local. For example, King JeongJo had his two Wonja(元子)’s Taesil(胎室) set up. In spite of his grandfather King YoungJo's commands about setting up Taesil(胎室), King JeongJo was forced to reinterpret them. He thought that keeping the jar in Taesil(胎室) caused a public nuisance, but he couldn't break up the royal family's cultural tradition. Thus, maintaining the tradition, he ordered not to cause a public nuisance so much. His loving of people went further to the point where the scales of the rituals were getting smaller, but the meanings of them were getting bigger. This is well shown in both the commands through which, after the first Wonja(文孝世子)'s death, the next Wonja(純祖)’s placenta was buried in Boeun(報恩) in 1790 and the written prayers(祝文) which were three writings for the ritual.
참고문헌 (22)
- "명종실록", ~
- "숙종실록", ~
- "연산군일기", ~
- "영조실록", ~
- "정조실록", ~
- "순종실록", ~
- "元子阿只氏安胎謄錄 (奎 13977)", ~
- "元子阿只氏安胎謄錄 (K2-2909)", ~
- "王世子冊禮謄錄 (K2-2692)", ~
- 국립문화재연구소, "국역 태봉등록" (2006), 민속원
-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 왕실의 안태와 태실관련 의궤" (2006), 민속원
- 국립문화재연구소, "국역 안태등록" (2007), 민속원
- 김지영, "조선시대 왕실 여성의 출산력 : 시기별 변화추이와 사회문화적 함의", 정신문화연구, 34(3), pp.259~299 (2011), 한국학중앙연구원
- 김지영, "조선시대 출산과 왕실의 ‘장태의례(藏胎儀禮)’ -문화적 실천양상과 그 의미-", 역사와 세계, 45, pp.39~76 (2014), 효원사학회
- 김지영, "왕실 장태의 의례적 성격과 ‘태’의 상징성",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학술대회 발표문 (2015)
- 김해영, "『世宗大王胎室石欄干修改儀軌』에 대하여", 古文書硏究, 45, pp.51~76 (2014), 한국고문서학회
- 김해영, "英祖朝 世宗‧端宗 胎室의 修改 役事", 南冥學硏究, (44), pp.187~220 (2014), 경남문화연구원[DOI]
- 김호, "조선 왕실의 장태의식과 관련 의궤", 한국학보, 29(2), pp.164~199 (2003)
- 마르티나 도이힐러, "한국사회의 유교적 변환" (2003), 아카넷
- 윤진영, "조선 후기 安胎儀禮의 개선과 정비", 조선시대사학보, (67), pp.391~428 (2013), 조선시대사학회
- 이영춘, "조선후기 왕위계승 연구" (1998), 집문당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왕실의 출산문화" (2005), 이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