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 始興 園幸路 조성과 운영
The Construction and Management of King Jungjo's Parade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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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조선 왕조 국가의 행궁은 국왕이 궁궐 외부로 행행했을 때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식사를 하거나 유숙하기 위해 사용하던 임시 거처 공간이다. 행궁은 대부분 국왕이 유숙할 때 사용하던 것이 일반적이었다. 식사와 휴식은 가공간을 설치하거나 일시적으로 건물을 이용하는 것이 많았다. 행궁은 국왕이 잠시 거처하기는 하지만 궁궐과 같이 왕족의 생활공간을 유지해야 하는 곳이므로 그 규모만 축소될 뿐이지 궁으로서의 격이나 기능은 최소한으로 유지해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시흥 행궁은 국왕이 궁궐 외부에서 사용하던 행궁 중에서 처음부터 국왕이 유숙하기 위한 궁으로 기획 조성된 곳이다.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행궁이 조성되기는 했으나 시흥 행궁과 같이 처음부터 국왕이 평상시에 유숙하고 이용할 행궁으로 기획하고 만든 곳은 화성과 온양이 대표적일 것이다. 그 외의 행궁은 전란을 대비하는 등의 특별한 목적이 있거나 일시적으로 관아를 이용하는 경우였다. 온양 행궁도 병 치료를 할 때만 사용하던 행궁이었으므로 시흥과 화성의 행궁은 매우 특수한 사례이면서 조선후기 행궁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다. 시흥 행궁이 화성의 융릉과 건릉을 이용하기 위해 조성한 곳이라는 점에서는 화성 행궁과 건립 배경과 목적에서 동일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시흥 행궁은 정조가 도성에서 화성으로 연결되는 시흥 행행로를 만들면서 조성했다는 것에서 큰 차이점이 있다. 오늘날 시흥의 기원이 시흥 행궁과 시흥로가 조성된 이후로 보아도 될 정도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시흥 행궁의 존재는 시흥로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으며 이 두 가지 요소가 존재할 때 정조와 그 이후 국왕들의 행행이 이루어진 것에서도 확인된다. 시흥로는 정조가 생모인 혜경궁 홍씨를 위해 조성한 효심의 도로였다. 수원에 새로 조성한 생부 사도세자의 현륭원에 생모를 모시는 와중의 도로가 편안했으면 하는 자식의 마음에서 만들어진 결과였다. 시흥로가 조성되기 이전에 도성과 화성을 연결하는 행행로는 남태령과 과천을 경유하는 험로였다. 따라서 정조가 연로한 생모를 위해 가마 이동에 용이한 행행로를 새롭게 조성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Abstract
The Construction and Management of King Jungjo'sParade Road
참고문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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