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우왕 시기 고려의 대명 외교와 사행로 변화
A Study on Daemyung Diplomacy and Changes in the Path of Envoys in Goryeo during the Periods of King Gongmin and King Wu
0
조회
0
다운로드
1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 글에서는 원말명초 고려에서 중국으로 이어지는 사신의 항로가 시기에 따라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세 시기로 나누어 살피고자 하였다. 첫 번째 시기는 명 건국 이후 하평촉사賀平蜀使로파견된 정몽주 일행이 난파된 1372년 겨울까지이고, 두 번째 시기는 1373년 정몽주 일행이 돌아온 후 조공으로 바치는 말과 공물의 양을 둘러싸고 양국의 갈등이 심화되었던 1384년까지이며, 세 번째 시기는 우왕이 명의 책봉을 받고 요동을 경유하는 것을 허락받은 1385년부터 명이고려에 철령위 설치를 통보하는 1387년까지이다. 첫 번째 시기 개경에서 금릉으로 이어지는 사행로는 황해 남부사단항로였다. 고려 사신은예성강의 벽란도에서 배를 타고 출발하여 서남해 연안을 경유한 후 절강의 영파에 도착한 후양쯔강을 거슬러 올라가 금릉에 도착했다. 그러나 벽란도에서 영파를 오가는 고려의 배가 침몰하는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자 고려는 명에 꾸준히 요동을 경유하는 길을 이용하게 해달라고요청했다. 두 번째 시기는 명이 요동 점령을 본격화하면서 고려에 공마를 본격적으로 요청한 시기이다. 명은 고려에 제주마 2,000필을 요구하고, 요동을 경유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에 채빈 등이 고려에 파견되어 말을 거두어가려 하였으나 제주에서 목호들의 난이 일어나 시일이 지체되었다. 그런 가운에 고려에서는 공민왕이 시해되고, 명 사신 채빈도 귀국 도중에 살해되었다. 이로 인해 양국의 관계가 악화되고, 교류도 일시 중단되었다.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고려가앞서 요구했던 요동 경유로를 일시적으로나마 이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시기는 우왕이 명의 책봉을 받고, 본격적으로 요동 경유로를 이용할 수 있게 된 시기이다. 사행로 측면에서 보면 요동-산둥-금릉 항로가 정착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영락제가 북경으로 수도를 옮길 때까지 고려는 이 항로를 이용하여 사신을 파견하였다. 요컨대 고려에서 명으로 가는 사행로는 명이 요동을 장악하지 못했던 시기에는 황해 남부 사단항로를이용하다가 명이 요동을 완전히 장악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요동을 경유하는 항로로 변화하였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In this article, we have divided the course of the This is unclear, it should be explained from Goryeo to China by dividing it into three period. is from the founding of the Ming Dynasty until 1372 when Jeong Mong-ju and his party sank while visiting Ming. The second period is until 1384, when the conflict between the two countries intensified over the number of horses and tributes paid after Jeong Mong-ju's party returned in 1373. The third period is from 1385, when King U received the appointment of Ming and was allowed to pass through Liaodong, to 1387, when Ming announced the establishment of the establishment of Cheolryeongwi鐵嶺衛, in Goryeo. In the first period, a Goryeo envoy set off by boat from Byeokrando in the Yesheng River, passed by the coast of the Southwest Sea, arrived at Yungfa in Zhejiang, and then traveled up the Yangtze River to reach Geumreung(Namgyung). However, due to frequent accidents in which Goryeo ships sank going to and from Yeongpa on Byeokrando, Goryeo asked Ming to allow him to use the road through Yodonginstead. The second period was when Ming began the occupation of Liaodong in earnest and made a full-fledged request to Goryeo for tribute horses. The Ming demanded 2,000 horses raised on Jeju Island from Goryeo and allowed them to pass through Liaodong. Accordingly, Chaebin and others were dispatched to Goryeo to try to collect their horses, but were delayed due to a rebellion of Mokhos in Jeju. In Goryeo, King Gongmin was killed, and Chae-bin, an envoy from the Ming Dynasty, was killed on his way home. This led to a deterioration in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and a temporary suspension of exchanges. The biggest feature of this period is that Goryeo came to use the previously requested Liaodong transit at least temporarily. The third period is when King Wu with the permission of the Ming Dynasty. was able to use the Liaodong transit in earnest. In terms of meandering routes, it can be said that this is the period when the Liaodong-Shandong-Geumreung route was settled. Later, Goryeo used this route to send envoys until Emperor Yongrak moved his capital to Peking.
참고문헌 (21)
- "星湖僿說", ~
- "高麗史", ~
- "明史", ~
- "太祖高皇帝實錄", ~
- "宋史", ~
- "圃隱集", ~
- "承政院日記", ~
- "高麗史節要", ~
- 안대회, "북학의" (2013), 돌베개
- 정진술, "한국해양사Ⅰ" (2013), 한국해양재단
- 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2" (1964), 鈴木學術財團
- 구범진, "초기 고려-명 관계에서 사행로 문제: 요동 경유 사행로의 개통 과정", 한국문화, (96), pp.105~136 (2021), 규장각한국학연구원[DOI]
- 김구진, "조선 전기 한·중 관계사의 시론-조선과 명의 사행과 그 성격에 대하여", 홍익사학, 4 (1990), 홍익대학교사학회
- 김보정, "여말선초 對明 남경사행로의 분석과 영향", 지역과 역사, (27), pp.253~277 (2010), 부경역사연구소
- 김순자, "한국의 대외관계와 외교사 (고려편)" (2018), 국사편찬위원회
- 김철웅, "高麗와 중국 元·明 교류의 통로", 동양학, (53), pp.65~82 (2013), 동양학연구원[DOI]
- 박현규, "高麗 賀平蜀使의 수로 교통 - 鄭夢周 기록을 중심으로 -", 포은학연구, 4, pp.79~94 (2009), 포은학회[DOI]
- 배규범, "圃隱 先生 明 使行길 踏査의 意味와 登州", 포은학연구, 9, pp.5~26 (2012), 포은학회[DOI]
- 이승수, "1386년 정몽주의 南京 사행, 路程과 詩境", 민족문화, 46, pp.31~64 (2015), 한국고전번역원[DOI]
- 이승수, "고려말 對明 使行의 遼東半島 경로 고찰", 漢文學報, 20, pp.5~35 (2009), 우리한문학회
- "물정보포털"[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