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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서학파의 의리관과 유인석의 시세 인식 – 석과불식(碩果不食)과 중행독복(中行獨復)을 중심으로 –

Hwaseo School's view of Righteousness and Yoo In-seok's recognition of the time - Focusing on Seokgwabulsik(碩果不食) and Junghaengdokbok(中行獨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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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19세기 중반 이후 서양에 의한 유교문명권의 붕괴가 가시화되었다. 이를 감지한조선의 유학자들은 기존의 의리론과 달라진 관점을 보였다. 화서학파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특히 주역에 등장하는 석과불식(碩果不食)과 중행독복(中行獨復)을 인용하여 자신들의 주장과 실천을 정당화했다. 물론 그들 사이에도 시기와 상황에 따른차이가 있었다. 이항로는 기존의 의미를 지속했다. 그의 수제자인 김평묵과 유중교는 위기 의식을 강조하면서 군자의 능동적인 행동 또한 강조하였다. 그러나 1905년을 기점으로 희망은 거의 사라졌다. 대한제국의 종식은 석과불식으로 상징되는 양(陽)의 기운의 소멸이었다. 유인석은 1908년에 조국을 떠났고, 신해혁명 이후 중국에서 복벽(復辟)의 가능성을 보았다. 한국의 식민지화와 중국의 변화는 그의 시세관에 다시 영향을 주었다. 그는 소중화로서의 조선의 역할은 마감되었고, 중국에서유교가 부활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졌다. 그것은 중화-소중화라는 전통적 사대질서의 회복이기도 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그 기대는 선언적 차원에 머무를 수 밖에없었다.

Abstract

After the mid-19th century, the collapse of Confucian civilization by the West became visible. Sensing this, confucian scholars in Joseon showed a different perspective from the existing righteousness theory. The Hwaseo school is representative. They justified their arguments and practices by citing Seokgwabulsik(碩果不食) and Junghaengdokbok(中行獨復) in I-Ching(易經). Of course, there were differences between them at different times and situations. Lee Hang-ro continued the traditional meaning. His disciples Kim Pyeong-mook and Yoo Jung-kyo reinforced the sense of crisis, but also emphasized the active action of wise men. By 1905, however, hope had all but disappeared. The end of the Korean Empire was the extinction of the energy of the Yang(陽) symbolized by Seokgwabulsik. Yoo In-seok left his country in 1908, and saw the possibility of the resurrection of the empire in China after the Sinhae Revolution. The colonization of Korea and changes in China influenced his view of the time again. He hoped that Joseon's role as SoJunghwa(小中華) ended, and Confucian civilization would be revived in China. It was also the restoration of the traditional order of Sadae(事大). But objectively, the expectations could only remain on a declarative le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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