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경전의 동이 인식에 관한 연구 — 13경 및 그 주석서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awareness about “Dong-YI(東夷)” in Confucianism scripture
0
조회
0
다운로드
3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본 연구는 한국사상의 원류를 연구하는데 필수적인 夷 또는 동이(東夷) 관련 유교경전 자료를 정리⋅분석 및 주해하는 한편, 동이 관련 유교경전 자료에 대한 대중적 접근성이 용이한 연구 자료를 제공하기 위하여 기획되었다. ‘동이’는 동아시아의 역사뿐만 아니라 한국의 사상과 문화의 원형을 탐구하는 데서도 필요한 핵심적 키워드이다. 또한 동이와 관련된 유교경전 자료는 시간적으로 선진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의 역사 전반에 걸쳐 있으며, 공간적으로는 중국, 한국, 일본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아직까지 夷 또는 東夷와 관련된 자료가 체계적으로 분류 정리 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자료의 번역과 주석 또한 이루어지지 않아서 연구자들이나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동이와 관련된 유교경전 자료를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아울러 유교경전 관련 주석서에서 시대별로 이 혹은 동이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파악하여, 이를 토대로 夷 내지는 東夷에 대한 인식과 그 정체성을 규명해 보았다. 일반적으로 夷 또는 東夷라고 하면 ‘동쪽 오랑캐’ 또는 ‘중국 사람들이 그들의 동쪽에 있는 족속들을 멸시하여 일컫던 말’, ‘四夷의 하나. 동쪽 오랑캐. 中國이 동쪽 나라의 異民族을 蔑視하여 일컫던 말’, “자세히는 황하의 중간쯤으로부터 하류 동쪽의 이민족, 곧 한국⋅만주⋅일본 등을 가리킴” 등으로 알려져 있고, 또 “중국 역사에서 동쪽에 사는 오랑캐(이민족)를 일컬어 부르는 말이다. ‘四夷’와 같이 夷는 오랑캐 전체를 일컫는 대명사로도 사용되었으나, 일반적으로 동서남북의 각 방위에 따라 오랑캐를 구분하여 동이·서융(西戎)·남만(南蠻)·북적(北狄)으로 불렀다.” 라는 식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유교경전에 언급된 夷 개념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것이 오랑캐 라기 보다는 오히려 君子 재지는 君子國을 의미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상에서의 동이관련 유교경전 자료를 분석해 볼 때 과거 “‘동쪽 오랑캐’ 또는 ‘중국 사람들이 그들의 동쪽에 있는 족속들을 멸시하여 일컫던 말’ 이라는 식의 인식은 매우 잘못되고 왜곡되어진 인식임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夷는 仁이며, 人이고, 또한 君子이다. 따라서 夷라는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바로 ‘사람다운 사람’⋅‘군자’, 내지는 ‘君子國’을 나타내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단어라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한 민족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와 역사 그리고 정신 혹은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변하기 쉽고 또 지키기 어려운 것이 정신일 것이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고 다른 것과 구별하거나 정의하기 어려운 특성 때문이다. 정신 혹은 사상은 변하는 것이고 변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듯 변하지 않는 것, 변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변해서는 안 되는 그 부분이 바로 정체성의 뼈대에 해당한다. 따라서 동이와 관련된 유교경전 자료를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분석하는 것은 이러한 뼈대를 구축하는 초석이며, 무엇보다 시급한 역사적 당면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한 한국의 정체성 확립은 정치⋅사회적 측면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우리 국가와 문화 및 사회 발전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Dongyi (Chinese: 東夷; pinyin: Dōngyí; Wade-Giles: Tung-yi; literally "eastern 'barbarians'") was a collective term for people in eastern China and in the east of China. People referred to as Dongyi vary across the ages. The early Dongyi culture was one of earliest neolithic cultures in China. According to the earliest Chinese record, Zuo Zhuan, the Shang Dynasty was attacked by King Wu of Zhou, while attacking Dongyi, and collapsed afterwards Dongyi culture was one of the oldest neolithic cultures in China. Some Chinese scholars extend the historical use of Dongyi to prehistoric times, according to this belief, the neolithic culture correlates to Houli culture, Beixin culture, Dawenkou culture, Longshan culture and Yueshi culture, five evolutionary phases. Deliang He, thinks that Dongyi culture used to be one of the leading cultures in neolithic China. The writing system of Dongyi was one of the oldest writing systems in neolithic China. There are opinions that the 20 pictogram characters discovered in a Dongyi tomb (山東莒縣大汶口墓葬) in Shangdong indictates some of the characters found, like “旦、越、斤、皇、封、酒、拍、昃”, are still used in Chinese characters. There are also opinions that Dongyi people were the inventor of arrows. Some classic Chinese history records like Zuo Zhuan, Shuowen Jiezi, Classic of Rites, all have some similar records about this. [3][4] The legendary god of archery in Chinese mythology, Houyi, could also be a Dongyi leader. Based on archeology findings, Dongyi people's ancestral worship totem is bird-shaped. In the meantime, The fundamental thing that Koreans should do is to find out Korean identy. Koreans cannot achieve their goals unless they enforce politics economics, educations, etc. in harmony with their own identity. However, some people say that Koreans do not have any dentity on the grounds that there is no Korean traditional thought. This view is, however, absolutely absurd because it is impossible for a nation to exist for oner five thousand years without having it`s own native characteristics. The most essential thought in Korean identity is Confucius` In(仁). In is originated from Yi(夷) or Yi-jok(夷族)`s heart. On this account, Confucius` In can be a precious thought to Korean people who have been suffering from many problem caused by the absence of Korean identity. If Korean could understand their original characteristics and if Korean couldrealize that their original characteristics are Confucius` In, then our culture and identity recovery of though may maximize efficiency of country and society development.
참고문헌 (65)
- "大學 , 論語 , 孟子 , 中庸 , 詩傳 , 書傳 , 周易 , 禮記", ~
- "春秋 , 毛詩 , 爾雅 , 別雅 , 周禮 , 春秋穀梁傳 , 春秋公羊傳", ~
- "春秋左氏傳 , 十三經注疏 , 六堂 崔南善全集(1-7)", ~
- 姜炅求, "古代의 三朝鮮과 樂浪" (1991), 기린원
- 姜仁求, "考古學으로 본 韓國古代史" (1997), 學硏文化社
- 郭昌權, "韓國 古代史 探索:그 구성과 문제점" (1987), 일선기획
- 郭春根, "太古史 切要:태고사학과 고구려 건국비사 요약본" (2005), 천사연출판사
- 국학간행회, "단군과 고조선에 관한 연구논문집" (1997), 민속원
- 김규승, "東夷古史硏究의 集点 一名 東夷諸族古代共通語" (1974), 汎韓書籍
- 김금자, "韓國思想論文選集1 檀君神話 및 古代思想(1)" (1998), 불함문화사
- 김백현, "神仙思想의 淵源으로 본 東夷族의 鳳凰文化", 중국학보, 47, pp.659~676 (2003), 한국중국학회
- 김상천, "고조선과 고구려 역사를 다시 본다" (2003), 주류성
- 김한국, "東夷 Vision" (1991), 大原出版社
- 노중평, "고조선 사람의 근원적 사유:인류의 첫 문명인 東夷의 사유체계" (2002), 대한
- 노태돈, "단군과 고조선사" (2000), 사계절
- 동아시아사연구회, "한국사와 동아시아" (1997), 東史
- 林均澤, "韓哲學思想史2" (1996), 湖西文化社
- 박문기, "貊耳:大東夷의 참역사를 밝힌다", pp.4325~, 정신세계사
- 朴性鳳, "東夷 朝鮮傳 關係資料註釋:二十五史를 中心으로" (1998), 白山資料院
- 朴性鳳, "東夷傳新羅關係記事의 整理" (1988), 慶熙大學校 韓國傳統文化硏究所
- 朴性鳳, "東夷傳渤海靺鞨關係資料自治通鑑三國關係資料" (1991), 경희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 사회과학출판사, "단군과 고조선에 관한 연구론문집" (1994), 사회과학출판사
- 신채호, "단재신채호 전집(상)", 형설출판사
- 愼鏞廈, "韓國民族의 形成과 民族社會學" (2001), 지식산업사
- 沈伯綱, "四庫全書 經部‧史部‧子部‧集部中의 東夷史料" (2003), 民族文化硏究院
- 安東濬⋅林承國, "韓國古代史學管見" (1978), 景仁文化社
- 吳在城, "東夷文字(俗稱漢字)옛音과 作法" (1990), 리(Li)民族史硏究會
- 尹乃鉉, "고조선 연구" (1994), 一志社
- 김용간, "단군과 고조선에 관한 연구 논문집" (1995), 민족문화
- 이병도, "上代史:古朝鮮-新羅末" (1948), 同志社
- 全海宗, "東夷傳의 文獻的 硏究:魏略·三國志後漢書 東夷關係記事의 檢討" (1980), 一潮閣
- 孔尙燮, "高句麗 國民精神에 관한 硏究", 석사, pp.1988
- 권소연, "기자신앙에 나타난 부작을 이용한 장신구연구", 석사, pp.1993
- 權兌遠, "古朝鮮의 文化疆域문제", 百濟硏究, 20 (1989)
- 奇修延, "後漢書"東夷列傳 硏究:三國志 東夷傳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박사, pp.2002
- 奇修延, "고대 東夷 연구", 석사, pp.1994
- 奇修延, "中國 文獻에 보이는 ‘東夷’와 ‘朝鮮’", 단군학연구, (4) (2001)
- 김경일, "人方관련 卜辭를 통해 고찰한 東夷 명칭의 기원", 중국학보, 38 (1998)
- 김백현, "神仙思想의 淵源으로 본 東夷族의 鳳凰文化", 중국학보, 47, pp.659~676 (2003), 한국중국학회
- 金庠基, "東夷와 淮夷 徐戎에 對하여(續·完)", 東方學志, 2 (1955)
- 金庠基, "東夷와 淮夷·西戎에 對하여", 東方學志, 1 (1954)
- 金時晃, "九夷와 東夷", 東方漢文學, 17 (1999)
- 김정배, "古朝鮮 연구의 史的 考察", 고조선단군학, 7(7), pp.185~206 (2002), 고조선단군학회
- 金哲埈, "魏志東夷傳에 나타난 韓國古代社會의 性格", 大東文化硏究, 13 (1979)
- 노태천, "三國志 東夷傳에 나타난 夫餘의 技術 관계 資料 考察", 大韓工業敎育學會誌, 13(2) (1988)
- 박경철, "고구려 '민족'문제 인식의 현황과 과제", 한국고대사연구, 31, pp.67~110 (2003), 한국고대사학회
- 朴宰用, ""三國志" "東夷傳" 韓條에 나타난 '倭'", 한일관계사연구, (16), pp.5~39 (2002), 한일관계사학회
- 朴贊洙, "三國志 東夷傳에 나타난 韓·倭의 親緣性" (1999), 민족문화
- 徐永大, "韓國宗敎史 資料로서의 三國志 東夷傳", 韓國學硏究, 3 (1991)
- 孫秉憲, "古朝鮮에 대한 考古學的硏究", 人文科學, 28 (1998)
- 宋鎬晸, "古朝鮮 國家形成 過程 硏究", 박사, pp.1999
- 宋鎬晸, "古朝鮮의 位置와 族屬問題에 관한 考察:미송리형토기의 분석을 중심으로", 석사, pp.1990
- 愼鏞廈, "韓民族의 形成과 檀君에 대한 社會史的 考察", 단군학연구, (3) (2000)
- 尹乃鉉, "古朝鮮의 疆域", 정신문화연구, 21 (1984)
- 윤내현, "고조선의 국가구조와 그 성격", 고조선단군학, 9, pp.55~82 (2003), 고조선단군학회
- 윤내현, "고조선의 도읍 위치와 그 이동", 고조선단군학, 7, pp.207~238 (2002), 고조선단군학회
- 尹乃鉉, "古朝鮮의 都邑 遷移考", 白山學報, 30 (1985)
- 윤용구, "고대중국의 동이관(東夷觀)과 고구려 - 동이교위(東夷校尉)를 중심으로 -", 역사와 현실, (55), pp.61~100 (2005), 한국역사연구회
- 李仁澤, "中國文化 源流로서의 東夷文化 考察", 中國語文學誌, 7 (2000)
- 이현주, "三國志 東夷弟傳의 祭儀 관계기사에 관한 일고찰", 석사, pp.1988
- 李亨求, "리지린과 윤내현의 ‘고조선 연구’비교", 歷史學報, 146 (1995), 146권
- 林均澤, "東夷 夏·殷·箕子周朝鮮 思想考察", 東西哲學硏究, (16) (1998)
- 林均澤, "東夷韓思想의 淵源的 考察", 韓國思想과 文化, (창간) (1998)
- 全海宗, "梁書 東夷傳의 硏究: 正史 東夷傳 比較檢討의 필요성과 관련하여", 대한민국학술원논문집, 39 (2000)
- 曺佐鎬, "魏志東夷傳의 史料的 價値", 大東文化硏究, 13 (19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