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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및 그 이후 시기북한의 ‘신해방지구’ 정책: 동화와 억압

North Korea’s ‘Newly Liberated Areas’ Policy During and After the Korean War: Assimilation and Rep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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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전쟁을 통하여 남한으로부터 새롭게 점령한 이른바 ‘신해방지구’(개성 등 5개 시·군)에 대한 북한의 정책과 조치를 살피는 연구이다. 북한 당국은 이 지역을 안정화시키고 북한 질서를 이식시키기 위해 식량 지원을 비롯한 각종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였다. 이와 함께 적극적인 계층을 훈련시켜 체제 유지의 수호자로 내세우고, 교양과 교육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의식 변화를 유도하였다. 교육과 교양으로 해소되지 않은 반체제적 요소들에 대한 처리에는 강압과 억제의 수단이 동원되었다. 자수자에게는 관용이 베풀어졌지만, 반역자에 대해서는 가족까지 불이익이 가해졌다. 김일성은 처음부터 월남자 가족을 구분 없이 박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되풀이하였는데, 이는 역으로 하부 집행 단위에서의 이들에 대한 차별과 박해가 끊이지 않았음을 입증한 것이다. 1957년 후반기부터 북한 언론매체에서 ‘신해방지구’라는 명칭은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그 후로도 ‘반체제적 요소’로 인한 북한 당국의 고민은 지속되었다. 그 해결책으로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으로 계급교양을 강화하는 방법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물리적 제재 없는 계급교양의 한계는 뚜렷했다. 결국 체제로의 편입 설득과 강제가 혼합된 ‘동화와 억압’은 이들 지역에 대한 북한 당국의 정책적 특징이었다.

Abstract

This article presents a study on North Korea’s policies and measures for the so-called ‘Newly Liberated Areas’ (five cities and counties) that came under its rule through the Korean War. The North Korean authorities provided various economic benefits, including food aid, to stabilize the region and transplant North Korean order. They trained the active class to be the guardians of the system, and induced a change in the consciousness of the residents through culture and education projects. The means of coercion and deterrence were mobilized to treat dissident elements that were not resolved through education and culture. Tolerance was given to those who surrendered, but for traitors, even their families were at a disadvantage. From the beginning, Kim Il-sung reiterated that North Korean families of those who fled south should not be indiscriminately persecuted. But this was itself evidence of lower enforcement agencies’ unrelenting discrimination and persecution against these families. Since the latter half of 1957, the North Korean media rarely used the name ‘Newly Liberated Areas’, but even after, the North Korean authorities continued to worry about ‘dissident elements there’. The best solution was to strengthen class education with Marxist-Leninist ideology. If we define the characteristics of the North Korean government's policy in this area, it can be regarded as a policy of ‘assimilation and repression’ in which incorporation into the regime and physical coercion were mix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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