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은 학문이다'와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두 명제는 양립가능한가?
‘Theology is an academic discipline’ and ‘Theology is not an academic discipline’: Are the two propositions compatible?
김종희
초록
본 고는 개혁주의 안에서 나타난 두 명제, 즉 신칼빈주의의 ‘신학은 학문이다’와 개혁주의생명신학의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의 양립가능성을 연구하였다. ‘신학은 학문이다’ 명제는 신학의 세속화 비판, 신학의 독립성 보존, 그리고 신학의 보편성 강조를 의미한다. 반면,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명제는 신학의 사변화 비판, 성경적 신학의 회복, 그리고 교회를 살리는 신학의 강조를 함축한다. 이러한 두 명제의 양립가능성을 일반은혜와 특별은혜 관점에서, 보편사와 구속사의 관점에서, 그리고 세 유형의 신학 관점에서 논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신학은 학문이다’ 명제는 신학의 거룩한 성격에서 시작하여 학문적으로 독립적인 신학의 위치로 강조점을 옮겼다. 반면,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명제는 신학의 학문성을 인정하면서도 성경의 복음을 핵심으로 하는 신학의 본질에 그 강조점을 두었다. 즉, 두 명제는 신학의 원천이 성경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지만, 전자는 신학의 학문적 방법을 강조하고 후자는 신학의 본질인 성경의 내용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발견된다. 이런 점에서 전자가 일반은혜 측면을 강조했다면, 후자는 특별은혜 측면을 강조했다. ‘신학은 학문이다’ 명제가 교회를 위한 신학을 전제하면서 다른 학문과 동등한 학문성을 강조했다면,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명제는 신학의 학문성을 전제하면서도 교회를 살리는 신학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 점에서 전자가 그리스도인들이 비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보편사적 영역에서의 신학을 강조했다면, 후자는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교회의 구속사적 영역에서의 신학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두 해당되는 보편사와 구속사 중에서, 시대적으로 당면한 문제 해결책으로 신칼빈주의는 보편사적 영역을 강조하고 개혁주의생명신학은 구속사적 영역을 강조한 것으로 평가된다. ‘신학은 학문이다’ 명제는 급진적인 알렉산드리아학파의 영향으로 야기된 신학의 세속화를 비판하고, 종교학으로 전락할 위기에서 교회 중심의 안디옥학파적 신학의 특징을 재정립하면서도, 온건한 알렉산드리아학파적 요소를 회복하고 이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명제는 지속적인 알렉산드리아학파적 영향으로 사변화되어 교회의 세속화를 야기한 신학을 비판하고, 알렉산드리아학파적 특징인 학문성을 인정하면서도, 안디옥학파의 성경적 특징을 강조하였다. 전자가 신학의 안디옥학파적 기초 위에서 알렉산드리아학파적 특징을 강화했다면, 후자는 신학의 알렉산드리아학파적 특징을 인정하면서도 안디옥학파적 요소의 회복을 강조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처럼 신칼빈주의의 ‘신학은 학문이다’ 명제가 일반은혜와 보편사와 온건한 알렉산드리아학파적 요소를 강조한 반면, 개혁주의생명신학의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명제는 특별은혜와 구속사와 안디옥학파적 요소를 강조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동시에 각각 강조되지 않은 부분들은 전제와 인정 정도로 공존하고 있다. 일반은혜와 특별은혜, 보편사와 구속사, 세 유형의 신학 등은 모두 개혁주의 안에서, 나아가 정통 기독교에서 균형을 이룰 때 온전한 신학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교회사가 증언한다. 같은 개혁주의 안에서 다른 명칭과 다른 명제로 나타난 것은 각각 당면한 시대적 위기상황과 밀접하다. 그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두 명제는 각각 당시 신학의 불균형을 바로잡고 온전한 신학을 재정립하기 위해 선포된 것이다. 따라서, 신칼빈주의의 ‘신학은 학문이다’ 명제와 개혁주의생명신학의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명제는 모두 정통 기독교 안에서, 그리고 개혁주의 안에서 양립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