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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6년 鴻山 전투의 의의와 戰場에 대한 재고찰

Re-exploration on the Meaning of Hongsan Battle in 1376 and its Battle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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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홍산 전투는 1376년(禑王 2년) 7월에 최영이 홍산 지역에서 錦江 유역을 침입한 왜구를 격퇴한 사건이다. 이는 40년 동안에 걸친 왜구와의 싸움에서 特記할 만한 戰績 중 하나이며 이른바 ‘대첩’으로 평가되고 있다. 본고는 먼저 홍산 전투의 배경과 전개 과정을 간단히 정리한 다음, 기존의 ‘대첩’이라는 평가에 과연 문제는 없는지, 그리고 戰場으로 인식되고 있는 태봉산성이 타당한지의 여부 등을 재검토하였다. 먼저 홍산 전투에 동원된 양측의 병력 규모와 고려군이 거둔 戰果가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전투 이후의 전쟁 양상에 있어서도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 점을 들어서 ‘대첩’이라고 평가하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덧붙여 홍산 전투의 승리를 통하여 기대한 만큼 효과는 거두지 못했으나, 당시 상황에서 시급히 요구되는 바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는 점에서 나름의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파악하였다. 다음은 홍산 전투의 전장을 태봉산성으로 보는 인식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는 1970년대 후반에 태봉산성을 護國 유적으로 정비하는 과정에서 세워진 鴻山大捷碑로 인하여 나타나게 되었으며, 문헌 기록이나 발굴 조사가 전혀 뒷받침되지 않은 채 성급하게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따라서 태봉산성의 立地 조건을 홍산 전투의 기록과 자세히 비교해보면 상당수 맞지 않는 부분이 확인되고 있다. 현재 관련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홍산 전투의 전장을 특정 지역으로 단정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일단 사료에 나타난 지형적 특징을 근거로 삼아 추정한 결과 飛鴻山 일대의 골짜기가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Abstract

Hongsan (鴻山) battle was a combat in which General Choi Young (崔瑩) defeated Japanese pirates (倭寇) at the Hongsan region who invaded Geum River (錦江) basin in July 1376 (2nd year of King Woo, 禑王), which is considered as one of great military victories over the course of 40-year fight against Japanese Pirates worthy of special mention and is assessed as a 'Sweeping Victory (大捷).' This study briefly summarizes the background and development process of Hongsan Battle and reviewes if there is no problem regarding the existing assessment of it as a 'Sweeping Victory' and if the recognition that Taebong Mountain Fortress (胎峰山城) was its battlefield is valid. This study pointed out that Hongsan Battle somewhat falls short to be assessed as a Sweeping Victory (大捷) in that not only the scale of military force mobilized and military accomplishments gained by the battle are unclear but also the battle did not have significant effect on the conditions of the war even after the battle. And yet, study evaluated that Hongsan Battle still holds significant historical meaning of its own in that it lived up to desperate requirements of the time to a certain degree even though it did not make accomplishments enough to satisfy expectations. Study then examined if the recognition that the battlefield of Hongsan was Taebong Mountain Fortress is correct. This recognition was the result of establishment of Hongsan Memorial Stone (鴻山大捷碑) in the process of designating Taebong Mountain Fortress as one of the remains of historical national protection in the late 1970s, which was a hasty outcome without the support of documentary records or excavation survey. Thus, careful comparison of geographical conditions with historical records of Hongsan Battle reveals considerable discrepancies. Although it is very difficult to assert any specific region as the battlefield of Hongsan Battle given the lack of related data available, as the result of assumption based on geographical characteristics which appeared in the historical data, there is high possibility that the battlefield was actually valleys around Hongyang-ri (鴻良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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