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미학에서 예술과 사유
Art and thought in Hegel's aesthetics
박정훈
초록
예술의 감각적 형상화 방식이 사상과 대립한다는, 그런데 예술이 개념적 사유의 영역에 속한다는 헤겔의 주장은 독자의 이해를 어렵게 한다. 이러한 난제의 해결 가능성을 잘 알려진 ‘예술의 과거성’ 논제를 통해 모색할 수도 있다. 정신사적, 문화사적 혹은 사회사적 변화에 따라 예술의 기능 또한 변화하였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 이 논제는 개념 혹은 사유와 무관한 예술이 독자적으로 존립했던 시대와 예술을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시대를 엄격하게 구분해 주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만으로는 헤겔이 주장하는 바를 오롯이 파악하기 어렵다. 특히 저 두 시대의 구분을 향유의 시대와 사유의 시대의 구분으로 읽을 경우 자칫 예술에 대한 태도 자체가 시대에 따라 철저히 이원화된 것처럼 이해될 수 있다. 예술 사유 및 예술 향유의 유무가 저 두 시대의 획을 긋는 준거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과거에도 예술 사유는 있었고 헤겔이 말하는 “오늘날”에도 예술 향유는 여전히 가능하다. 다만 “오늘날”에 와서야 예술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비로소 가능해졌다. 그렇다고 헤겔이 과거에는 인간 정신의 사유 없이도 예술을 제작하거나 수용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즉 과거성 논제는 예술 향유가 예술 사유로 전면 대체되고 말았다는 진단을 내포하지 않는다. 예술은 인간을 사유로 인도하는 고도의 지적 문화로서 정신의 자기 관계성을 드러낸다. 그런 까닭에 예술 향유는 인간의 자기 성찰을 수행하는 사유의 장이기도 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술 생산자와 예술 감상자는 예술을 통해 각기 특정한 방식으로 사유했다. 예술은 언제나 인간의 사유와 더불어 제작되고 수용되었다. 예술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근대에 비로소 본격화되었지만, 예술에서 인간의 사유는 언제나 가능했으며 예술에 대한 향유는 지금도 여전히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