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懸泉漢簡“置丞”簡與漢代郵傳管理制度演變

懸泉漢簡 “置丞”簡과 漢代 郵傳管理制度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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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懸泉置는 漢代의 중요 역참기구로서 그 유지에서 출토된 2만매의 漢簡은 우리들이 한대의 우역계통, 우역교통과 郵傳관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참고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본문에서는 이 懸泉置의 직관 중 “置丞”문제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즉 이 직관의 존재시간과 인명편년, 그리고 변천과정에 대해 살펴보고 이를 통해 置丞의 설치시간과 전후변화, 西漢 郵傳관리제도에 대한 부분적인 고찰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1. 懸泉置 최고행정장관으로서 “置丞”의 존재시간 “置丞”이 기록된 57조의 懸泉漢簡을 통해 대체적인 置丞의 존재 시간을 알 수 있다. 그 중 기년이 가장 빠른 것이 “五鳳元年二月丁酉朔己未”이다. 하지만 陳垣의 『二十史朔閏表』에 따르면 五鳳원년 2월은 丁酉朔이 아니다. 따라서 이 기록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빠른 시간은 五鳳 2년 11월이다. 이보다 조금 빠른 五鳳 2년 8월에 보이는 監官의 존재는 아직 置丞 직관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置丞 직관의 출현은 五鳳 2년 10월의 일로 볼 수 있다. 置丞簡 중 가능 늦은 기년은 初元 3년(B.C.46)의 것이다. 이렇게 보면 懸泉置에 置丞이 존재한 시간은 B.C.56년에서 B.C.46년의 11년간으로 볼 수 있다. 2. 置丞과 관련된 인명 고찰 현재 명확하게 알 수 있는 置丞의 이름은 7개이다. 그 중 5개는 기년과 함께 배열된 것이고, 나머지 2개는 명확한 기년을 알 수 없는 것이다. 5개의 이름은 “可置”, “曾壽”, “置”, “祿”, “僑”이며, 2개의 이름은 “何”와 “衆”이다. 또한 漢代 간독문서에는 일정한 문서격식이 있는데 일반문서에서는 관명의 뒤에 인명이 오지만, 어떤 문서에는 인명의 위치가 공란으로 처리되어 있다. 따라서 앞에 나오는 인명의 置丞으로서의 임직시간을 고려하면 공란으로 처리된 置丞의 인명을 알 수 있다. 한편 元康 5년조 간문의 기록에 따르면 “丞舒國”이란 3글자가 나오는데 주의하지 않으면 이를 懸泉置丞으로 오인할 수 있다. 그러나 懸泉漢簡의 다른 간문에 의하면 이 舒國은 懸泉置丞이 아니라 效穀縣丞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목간 “丞舒國”앞에는 “都吏丑危”가 나오는데 그 위치가 丞보다 앞에 있는 것으로 보아 지위가 비교적 높은 郡太守의 속관으로 뒤에 나오는 “監領”이란 말로 보아 이 都吏는 元康 연간에 懸泉置를 監領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그 인명인 “丑危”는 다른 간문에 보이는 “毋危”의 오독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元康 연간까지 置丞은 관직으로서 설립되지 않았고 都吏 등이 置를 監領하는 사무를 수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3. 직관 “置丞”의 興替와 郵傳 관리제도의 변천 현천한간의 자료를 통해 置丞의 설치 이전과 소멸 이후 置의 관리방식이 각각 달랐음을 알 수 있다. 置丞 설치 이전 亭長이나 都吏, 郡 太守의 守屬이 置를 監領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懸泉漢簡 《調査監置冊》의 기재에 따르면 원래의 監置史 張禹를 파면하고, 太守의 守屬 解敞을 파견해 監置하였다. 이는 元帝시기 置의 관리방식에 변화가 있음을 설명한다. 즉 元帝 초 여전히 과거에 설치된 “置丞”의 방식을 연용하고 있었지만, 元帝 3년 이후 宣帝 초년처럼 사람을 파견해 置를 監領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漢代 郵傳관리제도 변혁의 직접적인 체현이다.

참고문헌 (5)

  1. 相關文章較多, "1995—2005年敦煌懸泉漢簡研究綜述", 中國史研究動態 (2007)
  2. 參見陳垣, "二十史朔閏表" (1999), 中華書局
  3. 古代簡牘, "李均明", pp.~152 (2005), 文物出版社
  4. 張俊民, "<居延新簡>釋文例補—簡牘文字補釋方法芻議", 西北史地 (1991)
  5. 張俊民, "敦煌縣泉置探方T0309出土簡牘概述", 長沙三國吳簡暨百年來簡帛發現與研究國際學術研討會論文集,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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