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후보

난계(蘭溪) 박연(朴堧)의 악론(樂論)

Rankea's music theory

0

조회

0

다운로드

2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문인이면서 음악에 조예를 보였던 악성(樂聖) 난계(蘭溪)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단지 그의 음악사상에만 초점을 맞추어 논구되어 왔다. 하지만 세종조 이래로 유학자로서의 난계가 보여준 면모는 음악뿐만 아니라 유교의 위상을 정립하는데 있어서 충분한 가교역할을 했다. 이같은 사실은 그의 지속적인 상소문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유교의 예악이 당시의 혼란을 평정함과 동시에 치리(治理)의 근간을 삼기 위해서 고악(古樂)을 복원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같은 노력을 단순히 중국의 모방, 이른바 사대주의에 귀속된다는 언급은 변별해서 논의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그가 견지했던 고악의 복원에 대한 이면에는 조선의 예악의 불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절대적 사명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난계가 조선조 음악을 복원하는 작업을 통해서 묵수했던 원칙론은 오히려 그에게 수많은 오해의 여지를 낳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그가 예악을 『주례』의 원칙론에 입각해서 예악을 정초하려는 것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세종조 까지만 해도 유교와 불교의 갈등을 마무리 지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무속과의 긴 갈등의 여정은 지속되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기존의 논의는 이를 간과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 시기에 유교의 예악정비는 시대적 과제였다. 국가의 예제가 불교와 무교에 의해 대행되고 있었던 사실을 상기할 때 국가의 중심이 되는 유교의 예악의 주도하에서 국행(國行)의례가 진행되기 위한 노력은 유교의 입장에서 볼 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난계는 이러한 상황으로 반전시키기 위한 시대적 과업을 수행함에 있어서 유교의 원칙론을 묵수하면서 예악(禮樂)을 회복하는데 두었다. 더욱이 이를 위해서 불교와 무속에 대해서 유교가 취했던 보다 구체인 제재와 압박은 그가 말년에 남기 「가훈」의 여러 일화에서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Abstract

Rankea through the Confucian etiquette and music at the time attempted to calm the chaos. He is also complaining about the foundation of political order to restore the old music tipped all power. But when he tried to restore the traditional music of the music is just imitating China and the issues that must be distinguished. Rankea has sought to restore the old music and music courtesy of the Joseon Dynasty is an absolute sense of mission was to find a balance. But while he guarded the old principle of restoring the music gave birth to a lot of misunderstanding. Along this line presents a three causes. First, Confucianism and Buddhism on the other hand is a conflict of finishing well shamanism and the long duration of the conflict was focused on the need to journey. But it overlooked a previous discussion. Second, Confucianism complement manners and music, Buddhism and shamanism from which the country was held by the enforcement of the ritual was to Confucianism. Third, the resurrection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Shamanism eventually subdue when possible. On the contrary, he wrote his 'motto' to be discussed in detail.

참고문헌 (24)

  1. "蘭溪遺藁", ~
  2. "세종실록", ~
  3. "역주 난계선생유고" (1993), 국립국악원
  4. "예기", ~
  5. 권오성, "난계 박연선생에 대한 북한 음악계의 평가에 대하여", 한국음악연구, (42) (2007), 한국국악학회
  6. 김세종, "난계 박연의 제사음악, 논의와 정비", 국악교육, 29(29), pp.31~44 (2010), 한국국악교육학회
  7. 박정련, "현대적 관점에서 본 난계(蘭溪) 박연(朴堧)의 음악관", 민족문화논총, (43), pp.695~727 (2009), 민족문화연구소
  8. 손태룡, "박연의음악관", 신비, 10 (1990), 신일전문대학
  9. 송방송, "박연의 율관제작과 악기제조", 한국예술종합학교논문집, 3 (2000), 한국예술종합학교
  10. 이상덕, "박연의 음악에 관한 연구", 논문집, 18 (1981), 청주교대
  11. 이석주, "조선전기 유교의 명분론과 무속의 역할론", 한국사상과 문화, (55), pp.401~438 (2010), 한국사상문화학회
  12. 이석주, "유학의 원칙론과 가변상황의 역할론", 한국사상과 문화, (59), pp.497~528 (2011), 한국사상문화학회
  13. 이석주, "난계(蘭溪)의 노년(老年)사상", 한국사상과 문화, (68), pp.223~254 (2013), 한국사상문화학회
  14. 이완재, "공자에서 퇴계까지" (2001), 이문출판사
  15. 이창신, "박연의 음악사상연구", 청대학술논집 (2009), 청주대학교학술연구소
  16. 이혜구, "한국음악서설" (1989), 서울대출판부
  17. 최헌, "한국지성과의 만남" (1998), 부산대한국민족문화연구소
  18. 한지훈, "한국의 음악사상 (2001년도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 학술도서)" (2000), 민속원
  19. 박희민, "박연과 훈민정음" (2012), 휴먼앤북
  20. 손태룡, "한국음악사의 큰별" (1994), 중문출판사
  21. 손태룡, "한국음악의 이해" (2007), 영남대출판부
  22. 송방송, "한국음악사논총" (1999), 민속원
  23. 이효분, "우리 樂, 그림을 품다" (2008), 궁리출판
  24. 전통예술원, "한국중세사회의 음악문화" (2003), 민속원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3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