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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원구단 : 전통적 상징과 근대적 상징의 교차점
The Wongudan in the Daehan Empire : Its Visual Significance in the Modernization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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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미술
참고문헌 (53)
- "원구단을 종교적 측면이나 국가 의례의 차원에서 연구한 글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金相泰 丘壇復設과 그 性格 『 한국학연구』6·7합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한편 원구단을 대한제국기 국가제례의 변화상으로서 언급한 글로는 박종서 한말 국가제사의 변화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 한말 일제 강점기 國家祭禮공간의 변화 pp. 221-247이 있다." (1996)
- "增補文獻備考" (1996),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학술적 연구는 드물지만 원구단의 존재와 황궁우는 인터넷 등을 통해 조금씩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지난 4월 한 회사의 동호회가 문화재청으로부터 원구단 지킴이로 공식 인정되어 매주 원구단 청소와보존상태를 살피고 보고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원구단 문화재 우리가 지킨다", pp.2005052500501~
- "丘壇復設과 그 性格", pp.139~224 (1996),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건축물 분류 체계에서 원구단은 주로‘묘 와 단 ’항목에 들어 있다. 설명 방식도 주로‘유교적인 정치이념’을 표현한 것으로 제시되어 있을 뿐 건축적인 설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중 원구단과 황궁우에 관해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으로는 홍대형 『 한국의 건축문화재 를 들 수 있다.", pp.315~316
- "독립문에 관해서는 필자의 글 『 미술사와 시각문화』2", pp.60~83 (2003)
- "고종황제가 사랑한 정동과 덕수궁" (2004), 발언
- "독립문: 근대 기념물과‘만들어지는’기억", pp.60~83 (2003)
- "『고종실록』고종 35년 10월 11일." (1897)
- "이러한 시스템을 밝힌 대표적인 예로 일본 메이지 천황의 순행의례를 분석한 책인 다카시 후지타니 근대 일본의 권력과 국가의례』 을 들 수 있다." (2003)
- "대한제국기 입헌논의와 근대국가론 - 황제권과 권력구조의 변화를 중심으로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pp.253~294 (2002)
- "영조척 1척을 약 0.3m로 계산하였다."
- "大韓帝國의 建築組織과 活動에 관한 연구" (1997)
- "한국의 근대건축 기수 沈宜碩에 관한 연구", 16(2), pp.159~162 (1996)
- "칭제논의의 전개와 대한제국의 성립", pp.261~298 (1988)
- "4월 27일. 황궁우 및 원구단 수리공사 비용 명세서에 나온 규모이다. 우대성 大韓帝國의 建築組織과 活動에 관한 연구 홍익대 건축과 석사논문 p. 37 주 119에서 재인용.", (43)
- "예고 1. 원구단의 체제는 황천상제위 가 단의 제1층 북쪽 동편에서 남쪽을 가 단의 제1층 북쪽 서편에서 남쪽을 향하고 있고 과 야명성위 가 각각 제2층의 동·서쪽에 있으며 제3층 동쪽에 북두칠성 의자리를 두고 서쪽에 운사 의 자리를 두었다.", 『增補文獻備考』54
- "대한제국기 국가와 국왕의 위상제고 사업", 95, pp.81~112 (2003)
- "『고종실록』은 실록이 대개 왕의 서거 이후에 재정리되는 관례에 따라 고종 승하년인 1919년 이후에 정리되어서인지 서술방식에서 양력의 체계를 취하고 있는 반면 당시 기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승정원일기』나『일성록』은 음력의 체계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기의 기록은 기록된 매체에따라 날짜 기술에 차이가 있으며 기록된 매체와 일치시켜볼 때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때로 음력과양력을 함께 서술하였다."
- "고종 즉위 40년 및 망육순 기념행사와 기념물 대한제국기 국왕 위상제고사업의 한 사례", 111, pp.96~139 (2003)
- "1896-1904년 서울 도시개조사업의 주체와 지향성", 37, pp.187~206 (1997)
- "대한제국 황제정과‘민국’정치이념의 전개 고종의 국기제정과 군민일체 의 정치이념 으로 개제하여『고종시대의 재조명』에 재수록", pp.232~276
- "그 내용은 ⑴ 남문 밖 남단에 원구를 만들 것 ⑵ 단의 주위를 둥글게 쌓고 그 직경과 높이는 편의대로 할 것 ⑶ 담장은 없이 하고 나무와 풀을 심을 것 ⑷ 홍살문의 옛 법식은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국사편찬위원회 편"
- "『고종실록』고종 33년 8월 14일." (1896)
- "고종 황제의 어사진", pp.44~73 (2004), 국립현대미술관
- "대한제국 성립과정과 大禮儀軌" (2001)
- "이러한 방식은 조선시대에도 흔히 있어왔던 것이기도 하다.『 독립신문』에도 1897년 5월 13일자에“대군주폐하의 존호 尊號 를 대황제폐하로 올릴 일”로 전 승지 리최영과 전 참령 김교혁이 주동이되어 소청을 올린 기사를 싣고 있다. 또한 이 소청에 들 경비를 전직관리들이 추렴하고 있음도 함께보도하고 있다. 황제 즉위의 요청이 아래로부터도 쇄도하고 있음을 보도하여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 "명성황후와 대한제국" (2001), 효형출판
- "한국의 건축문화재" (2001), 기문당
- "이숙영이 올린 상소에서는 황제 즉위의 정당성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주장했다. ⑴ 중화제국의황제관에 입각해서도 단군과 기자의 왕통을 잇고 중국 요순의 덕화 를 보인 조선의 국왕이지금 천하를 잇는 위에 있으므로 정당성이 있다. ⑵『공법회통 』등 다른 나라들이 황제즉위에 반대하는 논거에 비추어 보아도 다른 나라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하고 다른 나라들은 때로 이르게 때로 늦게 승인하는 것이므로 가능하다. ⑶ 황제 즉위는 다른나라들 때문이 아니라 국민이 원하기 때문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자주독립의 국가에 어울리는칭호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承政院日記』고종 34년" (1897)
- "5월 20일에 원구단을 쌓도록 지시하였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때는본격적인 단이라기보다는 임시 설치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듬해 7월 24일조에는 각 제사의 규례를 살펴보도록 한 일이 같은 해 8월 14일에는 궁내부에서 고종의 지시에 따라 대사 에 관한 예제를 정리한 별지를 올렸고 이어 12월 15일에 원구단 향사 과 악장문 을 지어 바쳤다. 1897년 8월 10일에는 원구단의 제사 그릇과 악기 제조의 감독을 맡았던 궁내부 대신 등에게 상을 내린 것으로 보아 이미 제사의 차비를 다 마련하였고9월 21일부터 본격적인 준비가 진행되었다." (1895)
- "조선시대 양궐체제의 변천" (1997)
- "화려한 군주: 근대 일본의 권력과 국가의례" (2003), 이산
- "태극전은 뒤에 명칭을 중화전 中和殿 으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李朝高宗皇帝卽位のについて?その卽位儀禮と世界觀?", 33 (1995)
- "전날 희생제물을 점검하러 가는 행렬을 묘사한 것은", 그것이 처음으로 참관이 가능했던 모습이어서이기도 하고
- "朝鮮後期における??丘壇祭祀について(二)", 176(177) (2000)
- "이 행사는 왕실 행사를 기록하는 전통적인 방식인 의궤를 통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고종 연간은영·정조대에 이어 의궤 제작이 활발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대례의궤』를 비롯하여 명성황후의국장 을 기록한『명성황후혼전빈전도감의궤 』가 모두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된 해에 있었던 행사를 기록한것이다. 또한 고종의 즉위 40주년과 육순을 바라보는 나이를 기념하여 벌인 1902년의 행사도『고종임인진연의궤 』에 기록되어 있다.『 대례의궤』및『명성황후혼전빈전도감의궤』등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고 영인본으로 나와 있다. 또한 이 내용은 한영우 편 『 명성황후와 대한제국』 에 자세한 설명과 더불어 의궤 일부가 제시되어 있다." (2001), 효형출판
- "고종이 초상을 즐겨 그리고 사진 또한 즐겨 찍었음은 최인진 고종 황제의 어사진 『 근대미술연구 2004』 pp. 44-73에 자세히 나와 있다. 고종은 기꺼이 자신의 모습을 화가들에게나 외국인들의 사진기 앞에 드러냈는데 여기서 또한 고종의 개방적인 모습을 읽을수 있다." (2004)
- "황현은『매천야록』에 이때 참석한 각국 공사 및 외교관들 34명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일본 측에서는 공사 加藤增雄 1등 영사 秋日左都夫 보병대위 野津鎭武등이 오고 미국 측에서는 공사 알렌 이 왔으며 러시아 측에서는 공사 士貝耶 羅達玉등이 참석했다고 한다. 러시아인이 14명으로 가장 많았다. 프랑스 측에서는 판사 대신 葛林德 가 왔고 영국 측에서는 총영사 朱邇典 등 5명이 독일 측에서는 영사 具麟 이 왔다. 또한 황현에 따르면 이때 경축하는 예식의 비용으로 5만원이 들었으며 에 금 천 냥이 들었는데 값은 4만 5000원이었다고 한다 문학과 지성사", smir(v), pp.535~536 (2005)
- "『고종실록』고종 35년 6월 17일." (1898)
- "『고종실록』고종 35년 9월 24일. 먼저 지어진 원구단의 공사비 내역은 아직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1897년에 완공된 독립문 공사비는 총 5만 원이 든 것으로 나와 있어 이 무렵 공사비의 규모를 확인할 수 있다." (1898)
- "심의석에 관해서는 한국의 근대건축 기수 沈宜碩에 관한 연구 pp. 159-162 참조. 심의석은 원구단 황궁우뿐 아니라 배재학당 이화학당 같은 학교 건축 1902년의 기념비전과 석고단 1897년의 독립문 등의 기념물 건축 상동교회 같은 종교건축 등 이 시기 건축 활동에 광범위하게 참여한건축가였다." (1996)
- "7월 28일자에 황궁우와 동-서 무 행각 등을 수리한 기록에 나와 있다. 우대성 앞의 논문 p. 36에서 재인용.", (40) (1903)
- "태극기의 8괘 도안과 왕기 사용설에 대해서는 이태진 대한제국 황제정과‘민국’정치이념의 전개", pp.232~276 (1998)
- "고종의 국왕 위상제고 사업에 관해서는 이윤상 대한제국기 국가와 국왕의 위상제고 사업 pp. 81-112 참조. 망육순 기념사업에 관해서는 같은 필자의 글 고종 즉위 40년 및 망육순 기념행사와 기념물 대한제국기 국왕 위상제고사업의 한 사례", pp.96~139 (2003)
- "천단은 북경 외성 의 남부 영정문 안에 있는 대가 의 동쪽에 있으며 성 전체의중심선을 경계로 선농단 과 대치하고 있다. 이 천단은 영락 에 명이 북경으로 천도할 때에 창건된 것으로 전체적으로 북경 시가의 도시계획 안에 배치되어 있다. 당시에는선농단과 함께 성의 남쪽 교외에 있었지만 16세기에 외성을 고쳐 지으면서 성 안에 위치하게 되었다. 현재의 규모는 가정 에 이루어진 것으로 기년문과 황건전 외에는 대부분 18세기에 개건한 것이다. 중요한 건축물 가운데 하나인 기년전은 광서 에 벼락을 맞아 불탄 것을 이듬해인 1890년에 재건한 것이다. 총 면적은 273ha로 고궁 전체 면적의 3배에 해당한다. 천단은 1987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889)
- "『고종실록』고종 34년 10월 1일." (1897)
- "조선시대 양궐체제의 변천" (1997)
- "이곳은 조선왕조 초에 공주의 집터였던 이래 이러한 명칭이 남아 현재에도 지명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남별궁은 임진왜란 이후 중국의 사신이 머물던 곳이었다."
- "조선시대에 임시로 설치했던 원단의 위치는 도성 문 밖의 어느 곳이었던 듯하다. 세조 대 광해군 대기록은 金相泰 앞 논문 및 平木實" (2000)
- "대한제국의 도시개조사업에 관해서는 이태진 1896-1904년 서울 도시개조사업의 주체와 지향성" (1997)
- "『 고종황제가 사랑한 정동과 덕수궁』 에 수록된 지도. 사료 발굴자 김정동 교수는 이 지도를 1896년 이후 한성부 개조 사업의 실체를 확인시켜 주는 자료로 평가하였다.『京城府史』 문학과 지성사", 서울대학교 규장각 영인본 甲乙出版社영인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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