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트릭스 속에 살고 있다면
If we live in the Matrix?
신상규
초록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가정된다.데카르트 악령의 현대적인 버전이라 할 수 있는 퍼트남의‘통 속의 뇌(brain in a vat)’가설도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통 속의 뇌’는우리스스로가 실험실의 커다란 통 속에 담겨있는 두뇌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가정이다. 이 두뇌는 사악한 과학자에 의하여 슈퍼컴퓨터에 연결되어 있다. 슈퍼컴퓨터는 우리에게 감각적 경험을 야기하는 것과 같은 동일한 종류의 전기적 자극을 통속의 두뇌에게 공급하며, 그 두뇌로부터나오는 행동적 반응 신호를 중간에 가로채어서 그것에 적절한 피드백신호를 다시 두뇌에게 되먹임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통 속의 두뇌는, 일상적으로 우리가 갖는 경험과 동일한 경험을 갖게 된다.데카르트의 악령의 예나‘통 속의 뇌’가설은 대개 일종의 회의주의적도전으로 간주된다. 이들이 보여주는 것은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이 가상의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즉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이 세계의 실제 모습과는 전혀 다를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설은 국지적인 형태의 회의주의가 아니라, 총체적인 형태의 회의주의 가설이다. 만일 이러한 가능성이 사실이라면, 외부 대상이나 우리 스스로에 대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믿음들은 거짓으로 판명될 것이며, (타인을 포함한)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악령이나 컴퓨터에의해 적절히 프로그램 된 일종의 환각에 불과하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이러한 회의주의의 도전을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서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나 지식의 거짓됨에 대한일종의 인식적 회의주의이다. 만일‘통속의 뇌’와 같은 가설이 사실이라면, 그 뇌가 가지고 있을 대부분의 믿음은 거짓이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러한 통속의 뇌일지도 모를 가능성을 배제하거나, 혹은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믿음이나 지식이 거짓일 가능성을 봉쇄하는 것이 인식적 회의주의의 문제이다. 그런데 이런 지식우리가 매트릭스 속에 살고 있다면┃신상규267영화〈매트릭스〉는 가상현실이라는 기발한 착상을 중심으로 여러 철학적 주제들에 대하여 풍부한 이야기 거리를 제공한다.1)본 논문은〈매트릭스〉에 등장하는 가상현실의 가상성이 제기하는 철학적 질문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그에 답하려는 시도이다.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가상현실의 개념은 철학자들에게 결코 낯선 공상이 아니다. 17세기 데카르트는 수학적 지식이 거짓일 수 있는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하여, 우리를기만하는 전지전능한 악령의 존재를 가정하였다. 데카르트의 악령은 우리로 하여금 실제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현실을 경험하도록 만든다. 즉,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일종의 가상현실이며, 실제의 세계는 그것과266 제3부 일반논문한 인격성이나 도덕성과 같은 가치들은 매트릭스 내부에서도 여전히유효한 가치이며, 매트릭스의 가상성은 그러한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음을 주장한다. 따라서 본 논문의 잠정적인 결론은 매트릭스의 세계가보여주는 가상성이 우리가 영화에서 받게 되는 인상과는 달리 그렇게부정적으로 평가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