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의 헤겔에서 지젝의 헤겔로
From Deleuze's Hegel to Žižek's Hegel
김성우
초록
들뢰즈의 헤겔은 재현 극장의 변증법을 연출한 본질주의자이다. 들뢰즈는 헤겔 변증법의 핵심 동인인 모순 대신에 차이 자체인 ‘부정 없는 차이’를 제시한다. 들뢰즈에게 “부정과는 독립적이고 동일성으로부터 해방된” 심층적 차이가 동일성에 종속된 평면화된 모순보다 더 심오하기 때문이다. 또한 동일성 우위의 본질주의적 프레임에 사로잡힌 헤겔의 변증법은 차이 자체를 포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들뢰즈의 차이는 동일자가 출현하는 바탕이지만 전통적인 근거가 아니라는 점에서 하이데거적인 (무)바탕(Abgrund)에 해당한다. 차이는 현상의 (무)바탕이며 (비)존재(me on)이다. 변질된 헤겔의 변증법적 재판소는 부정성의 존재인 비존재(ouk on)에 의해 정의된다. 이런 점에서 모순과 달리 차이는 본질주의적 근거인 존재신학(Onto-Theo-Logik)과 결별한다. 그런데 들뢰즈의 헤겔 비판은 ‘통속화된 헤겔의 모습’을 전제한 것에 불과하다. 지젝이 제기한 ‘새로운 헤겔’은 본질주의자도 아니고 주체주의자도 아니다. 절대자를 실체만이 아니라 주체로도 파악하면서도, 주체를 모든 것의 근거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헤겔은 비(非)주체주의적 주체를 제시한다. 주체의 해방은 주체의 제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부정성이 없다면 주체가 사라진 실체만 남을 것이다. 들뢰즈식의 ‘부정 없는 차이’는 주체 없는 절대자가 되고 들뢰즈의 철학은 문자 그대로 ‘무인도의 철학’이 된다. 들뢰즈의 극장에 아이러니하게도 본질주의적 악당인, 그의 헤겔은 추방되고, 그 자리에 새로운 헤겔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