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군사 관련 令 조문 복원 - 병력 규모에 따른 지휘관 배치에 대한 규정을 대상으로
최상기
초록
신라의 율령은 제정 이후 필요한 부분만 변경, 집성하는 방식으로 정비가 이루어졌다. 군사력 운용과 관련된 규정도 이러한 방식에 힘입어, 긴박해지는 7세기의 국제 정세에 대응한다는 취지 아래 唐令의 형식에따라 신라의 고유한 용어를 사용해 조문이 수정되었다고 여겨진다. 한편 일본의 「大寶軍防令」과 「養老軍防 令」은 唐의 군방령만 전범으로 삼았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淨御原令』과 『大寶律令』을 편찬하던 7세기 후반에 일본과 당의 관계는 단절되었고, 당령의 해석과 적용에 필요한 기술과 정보는 신라로부터전해졌다. 또한 『養老令』은 『大寶令』을 거의 그대로 계승했으므로, 「養老軍防令」에 나타나는 당령과의 차이중 상당수는 『淨御原令』 편찬 단계에서 신라 영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養老軍防令」과당 군방령을 비교해 도출한 차이점을 신라의 사례와 함께 검토함으로써, 신라의 군사 관련 令 조문을 복원할 수 있다. 지휘부의 구성 방식을 제시한 당 군방령과 「養老軍防令」의 조문을 비교하면, 전자가 사무 관인의 정원과 두 구간으로 구분한 병력 규모를 서술한 반면, 후자는 지휘관 전체의 정원을 규정하고 병력 규모도 세 구간으로 나눴다. 특히 중국에서 사례를 찾기 어려운 副將軍이 「養老軍防令」의 조문에 사용되었는데, 이는 신라에서 문헌은 물론 「慶州 興德王陵 碑片」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신라의 부장군은 1개 부대의 책임자인 장군을 보좌하는 지위이자 군사제도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로서 일본에 도입되었다고 추정된다. 아울러 3개의 부대를 함께 투입할 경우 이들을 총괄하는 大將軍을 배치한다는 「養老軍防令」 조문의실제 사례도 신라에서 확인할 수 있다. 「養老軍防令」은 당령과 달리 3천 명 이상 5천 명 미만의 병력 규모구간을 추가했다. 이는 일본에서 독립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최소 규모가 3천 명이었음을 의미하는데, 신라에서도 3천 명은 중요하게 취급된 단위였다. 병력 규모가 확인되는 기사에서 신라군 3천 명의 출진사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6세기 중반 三千幢의 설치는 이 무렵부터 신라군이 3천 명을 기준으로 규격화되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高仙寺 誓幢和尙碑」의 音里火三千幢主는 하대까지 3천 명이라는 단위가 갖는 중요성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또한 신라는 3천 명 외에 1만 혹은 5천 명을 편성 단위로 사용했고, 1개 부대의 내부를 1천 명 단위로 구성했다. 이상의 내용을 토대로 지휘부 구성에 대한 신라의 令 조문을 ‘凡將帥出征 兵滿一萬人以上 將軍一人 副將軍二人 (大官大監)(二人) … (五千人以上 減 …) 三千人以上 減 … 各爲一軍 每惣三軍 大將軍一人’으로 복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