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그늘’ 한 세기 - 10.29. 이태원 참사의 공간적 기원을 찾아서
One Century in the Shadow of The Empires - Spatial origin of the Itaewon Tragedy of Oct. 29th
0
조회
0
다운로드
0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는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모인 젊은이들 수백명이 죽거나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고의 원인이나 책임자 규명은 현재까지도 진행중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와는 별개로 참사 장소는 전면의 대로가 오래 전에 개통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로 양측은 좁은 골목길과 불규칙한 필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곳에 많은 젊은이가 한꺼번에 모여들었고, 이는 터무니없는 참사로 이어졌다. 이 점에 주목하여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장소의 역사적 형성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19세기 말부터 서울에 진출한 일본인은 용산에 자리잡았다. 이태원은 밀려난 조선인이 정착한 ‘용산의 외부’가 되었다. 그런데 1920년대 일본인 전원도시의 꿈이 커가며 이태원은 유력한 후보지가 되었다. 그 결과 남산주회도로가 개설되고 연도의 개발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전원도시 개발은 일제 침략전쟁의 와중에 좌절되었다. 8.15 광복, 6.25 전쟁 이후 냉전 체제가 굳어지면서 개발이 좌절된 이태원에는 미군 대상의 유흥가가 형성되었다. 오랫동안 이태원은 ‘한국 속의 미국’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탈냉전과 세계화라는 변화 속에서 전환되었다. 2000년대 들어 이태원은 이국적인 문화를 즐기는 젊음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핼러윈을 즐기는 장소가 이태원이 된 것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장소는 우연히 형성된 것이 아니다. 그 곳이 여러 굴곡을 거쳐 오늘날 핼러윈의 성지가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한 세기에 걸쳐 서울에 드리워진 ‘제국의 그늘’이라고 할 수 있다.
Abstract
On the 29th in October, 2022, hundreds of young men and women during the Halloween festivities held in Itaewon in Seoul were crushed to death or severely injured. An inspection into the specific causes of the crowd crush and possible mismanagement for crowd control is still underway as of September in 2023. The back roads in Itaewon, where stampede incident happened, were too narrow and crooked-limbed to safely hold hundreds of thousands of revellers milling about under influence. The reason why these young people flocked in these narrow alleys on a western holiday can be found by examining its peculiar historic background. When Japanese immigrants settled in Seoul since the late 19th century before the occupation in Yongsan area, uprooted Koreans resided in Itaewon, “the outside of Yongsan”. In the 1920’s, this marginalized neighborhood was included in the garden city project of the Japanese colonist rulers. According to the plan, Namsan circular road was constructed and roads in Itaewon were to be broadened and improved. However the ambitious plan was lost in the midst of the Japanese invasion war effort. Since the Independence of Korea in 1945 and the Korea war, Itaewon was neglected in the city’s development plan and red light district frequented by US military men. For decades, the name of the town were synonymous with “America in Korea” in a rather negative way. All this changed as Seoul became a significantly more global metropolis with the end of Cold War. In the 2000’s, Itaewon transformed itself into a fashionable place where the youth enjoyed exotic cultures from around the world and Halloween festivities in the area had attracted increasingly more people each year. The place where Itaewon Tragedy occurred did not become itself by chance. Halloween, still a foreigners’ holiday for many older Korean people, found a right place for celebration in its back streets not by chance. The sense of place of Itaewon could be called the “shadows of Empires” cast in Seoul for a century.
참고문헌 (40)
- "경향신문", ~
- "동아일보", ~
- "매일경제", ~
- "매일신보", ~
- "조선일보", ~
- "京城都市硏究會南山麓視察", 朝鮮と建築, ~ (1935)
- 京城居留民團役所, "京城發達史" (1912)
- 京城府, "京城都市計劃調査書", ~ (1928)
- 酒井謙治郞, "京城都市計劃と地域", 朝鮮と建築 (1930)
- 河野誠, "都市計劃の一面觀", 朝鮮と建築 (1923)
- 河野誠, "田園都市に就て(上)", 朝鮮と建築 (1922)
- 河野誠, "田園都市に就て(承前)", 朝鮮と建築 (1922)
- "1936.3.11, 京城府會會議錄", 昭和十一年度京城府一般會計豫算綴(CJA0003143), ~ (1936)
- "1936.4.27., 京城府南山周回道路改修費起債認可申請ノ件, 京畿道知事→朝鮮總督", 昭和十一年度京城府關係綴(CJA0003182), ~ (1936)
- "1937.11.11., 請願書(梨泰院町ニ市街地區劃整理實施方ノ件請願), 梨泰院町 地主→朝鮮總督", 京城新市街地計劃及土地區劃整理決定關係綴(CJA0022534), ~ (1937)
- "1937.12.10., 請願書(市街地計劃道路及土地區劃整理實施速進ニ就テノ請願, 漢南町․普光町․凍氷庫町․梨泰院町 地主→朝鮮總督", ~ (1937)
- "1939.5.8., 京城府漢南土地區劃整理費充當起債ノ件, 京城府尹→朝鮮總督", 昭和十四年度京城府一般經濟關係綴(其ノ一)(CJA0003670), ~ (1939)
-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보고서, "국회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 (2023)
-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용산구지", 용산구청, ~ (2021)
-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서울, 20세기", ~ (2000)
- 서울역사박물관, "이태원 공간과 삶" (2010), 서울역사박물관
- 성혜균, "명동과 이태원의 관광 활성화를 위한 다원적 장소정체성 연구", 박사, pp.2018
- 신주백, "사진과 지도, 도면으로 본 용산기지의 역사 1" (2019), 선인
- 이의성, "근대도시계획과정에서 나타난 공동묘지의 탄생과 소멸", 석사, pp.2021
- 한겨레신문 겨레의 노래 사업단, "겨레의 노래 1집", 서울음반, ~ (1990)
- 경신원, "이태원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은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일어나는가?", 서울도시연구, 20(2), pp.1~17 (2019), 서울연구원[DOI]
- 김선호, "경계 공간의 재현: 이태원에 대한 뉴스 담론 분석", 기호학 연구, 39, pp.301~342 (2014), 한국기호학회
- 김주야, "조선도시경영회사의 주거지계획과 문화주택에 관한 연구", 주거환경, 6(1), pp.87~97 (2008), 한국주거환경학회
- 류주현, "외래축제 핼러윈의 한국 유입과정에 대한 지리적 고찰", 한국지역지리학회지, 29(1), pp.94~106 (2023), 한국지역지리학회[DOI]
- 박준형, "용산 지역 일본인 사회의 형성과 변천(1882∼1945)", 서울과 역사, (98), pp.263~297 (2018), 서울역사편찬원[DOI]
- 박현, "20세기 초 경성 신정유곽의 형성과 변화 과정에 대한 공간적 분석", 서울과 역사, (92), pp.269~310 (2016), 서울역사편찬원[DOI]
- 배주연, "추방된 이태원의 기억: 다큐멘터리 <이태원>과 소설 『단순한 진심』을 중심으로", 여성학논집, 37(1), pp.17~47 (2020), 한국여성연구원[DOI]
- 송도영, "도시 다문화 구역의 형성과 소통의 전개방식- 서울 이태원의 사례", 담론201, 14(4), pp.5~39 (2011), 한국사회역사학회[DOI]
- 송지연, "러일전쟁 이후 일제의 군용지 수용과 한국민의 저항", 이대사원, 30, pp.65~100 (1997)
- 염복규, "식민지시기 도시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민족적 대립의 정치’ –경성부(협의)회의 ‘청계천 문제’ 논의를 중심으로–", 역사와 현실, (88), pp.243~270 (2013), 한국역사연구회
- 염복규, "전원 도시로 가는 길? - 식민지시기 京城 ‘남산주회도로’의 부설 과정과 의미 -", 도시연구: 역사·사회·문화, (13), pp.61~86 (2015), 도시사학회
- 이보드레, "10‧29 이태원 참사와 국가의 안전조치 의무: 참사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책임 성부 판단을 위한 첫 번째 쟁점", 민주법학, (81), pp.11~46 (2023), 민주주의법학연구회[DOI]
- 정원옥, "애도를 위하여: 10.29 이태원 참사", 문화과학, 113, pp.43~66 (2023)
- "한국영상자료원 KMDB", ~
- "SONY MUSIC 유투브 채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