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世濂의 『海槎錄』에 관한 연구 -「聞見雜錄」을 중심으로-
The study on Gim Seryeom’s understanding of Japan in 『Haesalog』 - focus on 「Mungyeonjablog」
2
조회
0
다운로드
3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본고에서는 1636년 통신사의 부사였던 김세렴이 쓴 사행 기록인 『海槎錄』을 통해서 김세렴이 지닌 대일 인식의 특징을 살펴보고 아울러 『海槎錄』 중의 「聞見雜錄」을 통해 김세렴의 저술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고찰해 보았다. 김세렴은 許筠 그리고 柳馨遠의 집안과 혼인관계로 연결되어 있으며, 張維․李植․申翊聖 등의 문인들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이러한 관계는 그의 대일 인식을 형성하는데 작용하였을 것이다. 김세렴은 일본의 문화수준을 높이 평가하고 야만시하지 않았다. 그의 이러한 인식은 동시대의 다른 인물들과는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는데, 이후 18세기 문화교류가 활발했던 시기에 볼 수 있는 인식과 유사한 면모를 보여준다. 1636년 통신사를 통해 저술된 『해사록』의 가치와 그 의의를 확인하는 작업은 「문견잡록」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다른 사행기록과 비교하는 과정을 통해 진행되었다. 『해사록』 중에서도 「문견잡록」에 주목한 이유는 내용적인 면에서 볼 때 그것이 김세렴의 저술 중에서도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문견잡록」을 분석한 결과 그는 이전의 사행기록을 참고하고 인용하되, 여기에 자신의 견문과 함께 여러 자료들을 참조하여 고증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컨대 김세렴은 이전에 축적된 일본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한 위에 자신의 견문과 고증을 더함으로써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남기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의도에서 작성된 김세렴의 사행기록은 동시대 및 후대의 많은 문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교유가 있었던 趙絅이나 許穆, 『日本傳』을 남긴 洪汝河 외에도 한 세기가 지난 이후의 安鼎福이나 趙曮, 『萬機要覽』 더 나아가 근세에 이르기까지 김세렴의 기록은 지속적으로 인용되고 읽혀왔다. 이는 그의 저술이 사실적이고 객관적이었다는 점에 대한 반증일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변화하는 동아시아의 형세 속에서 조일 관계의 참고자료로써 이용되어왔던 것이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Gim Seryeom(金世濂)’s understanding and the significance of Haesalog(海槎錄), it is the record of the 1636 Korean Embassy to Japan(通信使; Tongsinsa). The 1636 Tongsinsa is important with regard to Joseon Dynasty’s foreign policy toward Japan. Because Joseon government dispatched a delegation after Yanagawa incident(柳川事件: 調興事件) which fabricated a sovereign´s message. This paper traces Gim Seryeom’s life and a network of friends, they had an influenced on each other. Gim Seryeom did not count Japan as an uncivilized country, but rather he appreciated them. This kind of view was different from a contemporary. Gim Seryeom left two types of documents after 1636 Tongsinsa, one is daily recording, Haesalog, another poetry, Sasanglog(槎上錄). This paper focused on Mungyeonjablog(聞見雜錄) in Haesalog. Mungyeonjablog is miscellaneous records of Japan such as customs, nature, history. The description is relatively precise and accurate. He analyzed past Tongsinsa records and ascertained whether these were correct. Finally he edited some of documents and added his own thoughts. Gim Seryeom’s Mungyeonjablog subsequently influenced many people, for instance, Jo Gyeong (趙絅), Heo Mok(許穆) and An Jeongbok(安鼎福).
참고문헌 (55)
- 金世濂, "東溟先生集"
- 金世濂, "海槎錄" (1967), 민족문화추진회
- "金東溟海槎聞見錄", 일본 東洋文庫 소장, 고려대학교 해외한국학자료센터 이미지, ~
- "善山金氏族譜(古2518-10-308)", 국립중앙도서관, ~
- "戊子式年司馬榜目(古6024-223)", 국립중앙도서관, ~
- 李敬輿, "白江先生集(D03B-0409)",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데이터베이스, ~
- 安鼎福, "覆瓿 9", 단국대학교 퇴계기념도서관, ~
- 李景稷, "扶桑錄"
- 任絖, "丙子日本日記"
- 黃㦿, "漫浪集"
- 黃㦿, "東槎錄"
- 姜沆, "看羊錄"
- 姜弘重, "東槎錄"
- 全滎, "斗巖集",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
- 林羅山, "林羅山文集" (1930), 京都史蹟會
- 石川丈山, "朝鮮筆談", 일본 京都大學圖書館, ~
- "寬永丙子信使記錄", 일본 東京博物館, web 이미지, ~
- 하우봉, "增正交隣志", ~
- "승정원일기 데이터베이스"[URL]
- "조선왕조실록 데이터베이스"[URL]
- 筑波大学付属図書館, "日本美術の名品-石山寺一切経" (2000), 狩野探幽・尚信の新
- "出屏風絵と歴聖大儒像 전시회 도록", ~
- 한국사학회, "朝鮮後期 通信使와 韓日交流史料展-對馬島宗家資料" (1991)
- 馮應京, "皇明經世實用編",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
- 이혜순, "조선통신사의 문학" (1996), 이화여자대학교
- 하우봉, "조선후기 실학자의 일본관 연구" (1989), 일지사
- 한명기,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 (2005), 푸른역사
- 三宅英利, "近世日朝關係史の硏究" (1986), 文獻出版
- 田代和生, "書き替えられた國書-德川․朝鮮外交の舞臺裏" (1983), 中央公論社
- 池內敏, "大君外交と「武威」" (2006), 名古屋大学出版会
- 姜世求, "柳馨遠ㆍ李瀷과 安鼎福의 學問的 傳承關係", 실학사상연구, 5(6) (1995)
- 구만옥, "16~17세기 朝鮮 知識人의 西洋 이해와 世界觀의 변화", 동방학지, 12(122), pp.1~51 (2003), 국학연구원
- 구지현, "權侙 撰 『詩人要考集』의 일본 전래와 간행의 의미", 영주어문, 18, pp.61~86 (2009), 영주어문학회
- 구지현, "17世紀 通信使 筆談唱和集의 出現과 初期 形態", 동양한문학연구, 30(30), pp.123~155 (2010), 동양한문학회
- 김영진, "새 발굴 驪州李氏 先世 문집⋅저술 고찰(1) — <太湖詩稿>를 중심으로 —", 온지논총, (36), pp.129~166 (2013), 온지학회
- 金靜日, "朝鮮後期 對日交隣政策 硏究: 1636年「通信使」와 朝鮮의 對馬島認識을 중심으로", 석사, 사학, pp.1988
- 김태훈, "17세기 對日정책 변화 연구", 박사, 국사학과, pp.2013
- 金鎬吉, "東溟 金世濂 硏究", 석사, pp.1981
- 박문열, "「東溟先生集」 <附錄>의 版本에 관한 硏究", 서지학연구, 4(44), pp.5~35 (2009), 한국서지학회
- 신병주, "17세기 전반 북인관료의 사상-김신국, 남이공, 김세렴을 중심으로", 역사와 현실, (8) (1992)
- 윤유숙, "17세기 朝日間 日本製 武器類의 교역과 밀매", 史叢, (67), pp.289~318 (2008), 역사학연구회
- 윤재환, "新資料 『太湖詩藁』를 통해 본 李元鎭의 詩世界 -資料 소개와 詩世界의 槪略을 中心으로-", 漢文學報, 18(1), pp.391~428 (2008), 우리한문학회
- 이근호, "17세기 전반 京華士族의 人的關係網 -《 世舊錄》의 분석을 중심으로 -", 서울학연구, 38(38), pp.151~194 (2010), 서울학연구소
- 이상규, "17세기 전반 왜학역관 康遇聖의 활동", 한일관계사연구, 2(24), pp.101~142 (2006), 한일관계사학회
- 이상규, "17세기 초중반 왜학역관 洪喜男의 활동―통신사 파견시 수행역관 활동을 중심으로―", 한일관계사연구, 2(26), pp.233~272 (2007), 한일관계사학회
- 이정은, "金明國의 丙子․癸未通信使行 활동작품 분석 -<達磨圖>․<蘆葉達磨圖>중심으로-", 인문학논총, 27, pp.59~86 (2011), 인문과학연구소
- 이정철, "선조 대 ‘동서분당’ 전개의 초기 양상 - 이이를 중심으로 -", 민족문화, 43, pp.259~300 (2014), 한국고전번역원
- 정도상, "동명 김세렴의 「사상록」 고찰-택당 이식의 비평을 중심으로-", 漢文學論集, 20 (2002)
- 정훈식, "朝鮮後期 通信使行錄 所在 見聞錄의 展開 樣相", 한국문학논총, (50), pp.231~261 (2008), 한국문학회
- 조정효, "日本往還日記의 사행문학적 성격 연구", 문창어문논집, 47 (2010)
- 韓泰文, "조선후기 통신사 使行文學 연구", 박사, 국어국문학, pp.1995
- 한태문, "17세기 通信使 使行文學의 전개와 문학사적 의의", 人文論叢, 57 (2001)
- 허경진, "그림과 찬으로 화폭 위에 남긴 朝ㆍ日 인사들의 교유", 아시아문화연구, 17, pp.409~437 (2009), 아시아문화연구소
- 若木太一, "朝鮮通信使と石川丈山-「日東の李白」", 語文研究, 52-53 (1982), 九州大学国語国文学会
- 鈴木信昭, "朝鮮仁祖八年問安官崔有海の伝聞した西学情報-陳奏使鄭斗源が西洋文物を贈与された遠因", 朝鮮学報, 221 (2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