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사 선각대사비에 보이는 왕건과 궁예 - 비문 재판독과 해석 교정 -
하일식
초록
강진 무위사에 있는 선각대사비에는 독특한 내용이 담겼다. 다른 선사비들에서 볼 수 없는, 궁예 말년의 狂氣와 잔인성을 잘 드러낸 서술이 있다. 그러나 그동안 판독이 불완전했고, 내용을 해석하는데도 혼란이 있었다. 나는 판독을 전면 재검토하고, 아울러 비문 문장도 다시 해석했다.
최언위는 현재 국왕인 왕건의 과거 활동을 서술하며 大王이라고 표현했다. 시간을 소급한 것이다. 배 위에서 선각대사를 만날 때, 처형 직전에 선각대사를 변호하는 글을 보낼 때 모두 왕건을 대왕이라 표현했다. 임금의 명령을 받든다는 奉制, 임금의 서한을 뜻하는 丹詔 등도 그렇다. 그리고 현 시점의 왕건을 今上이라 칭했다. 반면 궁예는 前主로 표현되었다.
선각대사를 취조하는 장면에서 궁예를 主上이라 표현한 구절이 있다. 궁예가 쫓겨나기 전에 선각대사의 제자들이 작성한 行狀에서 그대로 옮긴 탓이다. 최언위는 왕건이 즉위하여 개성으로 수도를 옮긴 18년 뒤에 개성으로 와서 왕건의 신하가 되었다. 그래서 당시 상황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나는 궁예가 선각대사를 취조하는 문장을 분석했다. 그리고 선각대사에게 덧씌워진 혐의를 추정했다. 하나는 후백제와 내통한다는 의심이었다. 다른 하나는 선각대사가 왕자와 공모하여 자신을 왕위에서 내쫓으려 한다는 두려움이었다. 이는 그동안 전혀 드러나지 않았던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