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국왕의 초상: 와룡관학창의본 이하응초상
Portrait of Shadow King: Representation of Yi Ha-eung in Crane Garb and Dragon C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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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은 조선의 26대 국왕인 고종(高宗, 재위1863-1907)의 친부로서, 고종의 즉위부터 10여 년간 정권을 장악하고 강력한 개혁정치를 추진한 인물이다. 그는 정치가인 동시에 추사 김정희에게 묵란과 서예를 배운 서화가이자 예술후원자였다. 흥선대원군은 50세가 되는 1869년 세 점의각기 다른 의상을 입은 초상화를 제작하였다. 그중 한 점인 와룡관학창의본 초상화가 이 논문의 주제이다. 흥선대원군이 이 초상화를 주문한 의도를 알려 주는 정보는 없다. 그러나 1869년은 그가 집권 초부터 추진해 온 정책이 성공을 거두면서그의 정치적 영향력이 정점에 이른 시기였다. 이러한 의미심장한 제작 시기는 이작품의 제작 의도와 표현의 핵심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와룡관학창의본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의 앞에 놓인 다양한 문인의 기물이다. 그의 곁에 전시된 향로, 안경, 벼루, 자명종, 인장, 환도 등의 다채로운 기물은 문인들의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일용도구일 뿐 아니라 문화적 향유의 대상이었다. 일반적인 문인 초상화 제작의 관습을 따르면 주인공과 함께하는 문방기물은 예술과 문화에서 정신적 자유를 추구하는 이상적인 문인상을 표현하고자 할때 이용된다. 따라서 이 기물들은 문인이자 예술가로서 흥선대원군의 정체성을전달하기 위해 선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초상화를 제작할 당시 그가 국왕 이상의 존재로서 국정을 운영한 실질적인 통치자였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흥선대원군은 무엇을 위해 이러한 초상화를 제작하였는가? 그가 그의 주변에 배치한 기물은 무엇을 위해 선택되었는가? 이러한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각 기물의 정체를 정확히 규정하고 각각의 문화사적 함의를 검토하며, 그 결과를바탕으로 기물의 소유주인 흥선대원군에게 이들이 의미하는 바를 추론할 수 있다. 연녹색의 바탕에 노란색의 용이 새겨진 벼루는 송화석연(松花石硯)이라고 하는 청대 궁정에서 제작된 벼루로서, 강희, 옹정, 건륭제와 같은 황제들이 선호한벼루였다. 황금빛의 시계는 17세기 영국에서 만들어진 토마스 톰피온(ThomasTompion)의 시계와 동일한 디자인을 보인다. 송화석연과 서양의 시계는 청대 궁정에 진설되어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기물이었다. 흥선대원군이 두 기물을 그의 초상에서 강조한 이유는 이들을 통해 그의 권력의 정당성과 업적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하려는 의도에 있을 것이다. 이 초상화를 극적으로 만드는 가장 흥미로운 요소는 기물에 쓰인 두 개의 명문(銘文)이다. 그 첫 번째는 인장에 쓰인 ‘근봉(謹封)’이라는 인문(印文)이다. 근봉인과 그 곁에 놓인 중국제 시전지갑은 흥선대원군이 평상시 서간을 쓸 때 즐겨사용한 도구였다. 흥선대원군의 정치에서 서간은 매우 중요한 의사소통의 수단이었으며, 근봉인은 그 서간을 밀봉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두 번째는 그의 곁에세워진 환도에 적힌 ‘척사검(斥邪劍)’이다. 검은 조선의 문인들에게 정신적 수양과 굳은 의지를 의미하는 가장 효과적인 상징물이었다. 대원군은 이 칼에 ‘위정척사(衛正斥邪)’, 즉 바른 정치로 사악한 외세를 물리친다는 의미에서 온 ‘척사’라는명문을 금으로 새겼다. 흥선대원군이 집권한 19세기 말은 서구열강의 동양진출에대한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조선의 전통적인 사회질서와 정치체제에 대한개편이 요구되는 때였다. 역사의 갈림길에서 조선 정부와 대원군이 선택한 공식적 입장은 척사론과 쇄국정책이었다. 척사의 명문과 흥선대원군의 초상화는 그의정책과 의지를 상징하는 시각적 증거이다. 우리는 흥선대원군의 의도에 따라 제작된 초상화를 따라 그의 정치적 전망, 성취에 대한 확신, 아울러 그의 한계를 읽어 본다.
Abstract
Regent Heungseon Yi Ha-eung (1820-1898) was the resourceful father of Gojong (r. 1863-1910), the 26th king of the Joseon Dynasty. He was a king de facto who exercised dominant authority in shadow hidden under the rulership of his young son and actively advocated grand political reforms during the last decade of the dynasty. Regent Heungseon not only was a political man but also a painter of ink orchid and a calligrapher. At the age of 50 in 1869, he commissioned three versions of his portraits. This essay explores the version in which he presents himself in a scholar’s crane garb and the dragon cap of Zhuge Liang (諸葛亮, 181–234). His own inscription on the painting records precisely the names of painters and mounter, and the date of production; here Regent Heungseon does not explicate his motives for the commission. However, deliberating his rulership, we can notice that his political leverage reached the summit around 1869 after his reforms being successfully carried out. He must have aimed to commemorate his achievements until 1869 in his lifelikeness. If so, how did he devise visual strategies in the portrait? The most remarkable characteristic of the portraits is the assorted accouterments disposed around Regent Heungseon, such as bronze incense burner, colored glasses, ink stone, clock, jade seal, sword and so forth. In the tradition of portrait of elite man in Joseon, the scholar’s accouterments demonstrate the sitter’s pursuit of profound knowledge and spiritual liberty in both private and cultural life. Many researchers suggest that this version represents the Regent’s literati identity as a scholarly painter and calligrapher. However, we should consider the fact that he was positioned as the uppermost ruler to formulate and proceed the policy in government when the portrait was produced in 1869. Songhuashi yan (松花石硯), the inkstone with green and yellow stone and glamorous western clock on the table are courtly props that symbolize the authority of Qing emperors. Similarly, Regent Heungseon also had in mind to present the legitimacy of his rulership as well as his connoisseurship of rare and valuable antiques. Above all, the three Chinese characters carved on the sword make the painting more dramatic. The inscription reads “cheoksageom (斥邪劍),” the sword for expulsion of wickedness. In the milieu of the late nineteenth century, cheoksa alludes to Wijeong Cheoksa (衛正斥邪), which literally means, “defending orthodoxy and rejecting heterodoxy.” Joseon was confronted with Western invasions during the reign of Regent Heungseon. Cheoksa means to defend the country against Western force. The official position adopted by the Joseon government was the policy of seclusion against Western Force. The sword with inscription Cheoksa thus symbolizes his commitment to keep this policy. In the portrait of Yi Ha-eung, we can take a glimpse of his self-confidence to political perspective as well as his own achievement. This essay attempts to demonstrate how the portrait of Regent Heungseon is presented exquisitely with specific political messages, and questions the relationship between visual art and political discourse in the lat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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