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한의사 신광렬의 생애와 활동
The Life and Activities of East Asian medicine doctor Shin Kwang-ryul after lib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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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해방 직후 신광렬은 신북청인민종합병원 원장에 재직하다가 1945년 12월 소련군정 통치에 적개심을 가지고 홀로 월남하였다. 이후 그는 정치공작대에 가입하여 함경도 책임위원으로 신북청에 파견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탄로가 나 그의 부인이 보안대에 끌려가 고문에 죽고 말았다. 훗날 이를 알게 된 신광렬은 『월남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결심하기도 하였다. 이후 신광렬은 정계를 떠나 약방을 운영하면서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그는 1950년 6·25전쟁에 충남 당진에 피신하여 한의원을 개원하였다. 1955년 그는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충남 아산에 청파한의원을 개원하였다. 그는 1969년에 서울 마포 도화동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다가, 1972년경 홍은동으로 옮겨 함남한의원을 개원하였다. 이때 그는 ‘靑坡驗方要訣’을 집필하였다. 신광렬은 말년에 가난한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하였는데, 척추를 다쳐 몸이 불편한데도 그 일을 계속하였다. 그는 1980년 ‘긍휼지심’이란 유지를 남기고 생을 마감하였다.
Abstract
Immediately after liberation, Shin Kwang-ryul served as the director of the Shinbukcheong People's General Hospital, and defected to South Korea alone in December 1945 with hostility to the Soviet military government. Later, he joined the political operation team (政治工作隊) and was dispatched to the Sinbuk Office as a member of Hamgyeong-do's committee. However, after this was revealed, his wife was taken to the security and tortured to death. Later, when he learned about this, he left a Wolnam Yuseo (越南遺書) and decided to commit suicide. He left politics and started a new family while running a pharmacy. In 1950, he fled Dangjin, Chungnam, during the Korean War and opened an East Asian medical clinic. In 1955, he passed the Korean Medical Examination and opened Cheongpa Oriental Medicine Clinic in Asan, Chungcheongnam-do. In 1969, he ran an East Asian medical clinic in Dohwa-dong, Mapo, Seoul, and moved to Hongeun-dong in 1972 to open Hamnam Oriental Clinic. At this time he wrote a Cheongpa Pharmacy Summary (靑坡驗方要訣). In his later years, he treated poor patients for free, and he continued to work even though he was unwell due to a broken spine. He died in 1980 leaving behind a “proud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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