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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기 북한의 서울시민 전출사업 연구

A Study on the Migration Project of the North Korean Government to Seoul Citizens in the Korean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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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북한정부는 전시생산체계가 극심한 노동력 부족문제에 봉착하자, 서울시민을 북한지역으로 이주시키는 사업을 추진하였다. 서울시민전출사업은 노동자들을 북한지역으로 이주시켜 각 공장・광산・기업소 등 생산직장에 투입함으로써 후방의 전시경제를 원활히 운영하기 위해 계획되었다. 전출사업은 조선직업동맹 서울시평의회가 주관하였다. 북한정부는 전출자들을 모집한다고 선전했으나, 실제로는 전출대상자명단 등을 작성해서 강압적・강제적 방식으로 동원하였다. 서울시민 전출사업은 7월부터 9월 초순까지 약 2개월간 추진되었다. 그러나 전출사업은 북한정부의 무리한 동원정책으로 인해 8월 14일 무렵부터 전출자가 급감하면서 더 이상 진척되지 못했다. 이 사업은 서울시뿐만 아니라 경기도에서도 추진되었으며, 총 전출자는 3,0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6・25전쟁 당시 서울시민들이 납북된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서울시민 전출사업이었다. 전출자들은 다른 지역의 납북자들에 비해 기술자・기능자의 비율이 높았으며,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단위로 이주한 사람들이 많았다. 전출자로 선정된 서울시민들은 개인이나 세대 단위로 북한지역으로 이주되었다. 그러나 전출자들은 북한정부에 의해 이주과정에서 반북혐의자로 의심받았으며, 이주 후에도 생산현장에서 요시인으로 철저히 감시받았다. 북한은 남한지역을 점령한 후 그 주민들을 자국의 ‘인민’으로 간주한다고 공표했지만, 북한지역으로 이주된 서울시민들은 새로운 국가권력으로부터 ‘인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북한정부에게 이들은 이주 후에도 대한민국정부에 대한 잠재적 지지자이자 ‘인민’이 될 수 없는 이질적 존재로 인식되었다.

Abstract

When the wartime economy faced a shortage of labor force, the North Korean government initiated a project to relocate Seoul citizens to North Korea in July 1950. This work was carried out in order to solve the labor shortage problem by moving workers to North Korea and planting them in factories and mines, and to smoothly run the wartime economy in the rear. The migration project was led by the Seoul branch of the Chosun Labor Union under the direction of the North Korean government. The migration project was promoted for about two month from July. The Seoul branch office recruited migrants from streets, markets, factories, and housing, but the actual recruitment process was conducted in a forced manner. The migration project was promoted not only in Seoul city but also in Gyeonggi Province, and the total number of migrants exceeded 3,000. The citizens of Seoul who were selected as migrants were transferred to individuals or families. However, after moving to North Korea, migrants were thoroughly screened for potential North Korean government opposition. Although North Korea announced that it would consider its residents as citizens after occupying South Korea, the migrants were recognized as potential supporters and alien beings of the Republic of Korea even after their mig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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