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개화기 프랑스 선교사들의 정착과 한국 인식

Settlement of French Missionaries during the Enlightenment Period in Korea and Their Perception of the Country

0

조회

0

다운로드

8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이 논문은 1876년부터 1910년 사이, 프랑스 선교사들의 한국 정착과 한국에 대한 인식 문제를 살펴본 글이다. 프랑스 선교사들은 재입국한 1876년 이후 신자공동체를 재건하는 한편, 전교회장을 양성하고, 고아원, 양로원, 시약소, 무료 장례 등의 활동을 전개했으며, 학교도 운영하였다. 선교사들의 이러한 활동은 당시 천주교의 인상을 좋게 하고 외교인들을 감화시켜 신자수를 증가시켰고, 천주교가 지역 사회와 소통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가운데 선교사들의 정착도 이루어지게 되었다. 다음으로 선교사들은 조불조약의 ‘영사재판권, 외국인 보호’ 조항과 프랑스 공사의 후원을 토대로 선교 활동을 전개했다. 그 결과 이들은 양대인으로 호칭될 정도로 향촌 사회에서 영향력이 커졌고, 이러한 선교사들의지위 향상은 교세의 증가로 이어졌다. 이와 함께 1895년 1월에 있었던 남종삼과 홍봉주의 신원 조치와 8월에있었던 뮈텔(Mutel) 주교의 고종 알현도 선교에 영향을 미쳤다. 역적으로 취급되던 신자들이 신원되고, 사교라고 탄압받던 천주교의 책임자가 국왕을 만났다는 것은 선교사들이 지역 사회에 정착할 수 있는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한편 개화기 한국 사회에 정착했던 선교사들은 서구문화 우월의식에 입각하여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평가했고, 한국이 정치적으로 부패하고 낙후되었다는 인식 아래 일본의 한국 지배를 인정하고 한국의 독립 문제를 외면했다. 선교사들은 착취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고, 일제의 침략이 의미하는 바도 이해하고 있었지만,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체제옹호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그리하여 조선 왕조가 유지될 때에는 왕조 체제를 옹호했고, 1905년 이후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아들였다. 결국 종교의 자유, 한국의 독립 능력에 대한 회의가, 개화기 프랑스 선교사들이 한국의 민족 문제를 외면한이유지만, 이러한 인식의 기저에는 프랑스인으로서 한국 문제를 바라보는 타자의 입장이 깔려있었다고 하겠다.

Abstract

Since their return to Korea in 1876, French missionaries, in efforts to reconstruct a Christian community, had engaged in community activities such as cultivating catechist, offering free funeral services and running orphanage, nursing home, pharmacy and even schools. Their outreach efforts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the interactions between the Catholic Church and local communities and contributed to increasing the number of Catholics in Korea. In the meantime, the French missionaries were able to settle down in the country. They carried out their missionary work based on the Korea-France Treaty’s provisions for consular jurisdiction and the protection of foreigners and with support from the French Minister to Korea. As a result, they came to have considerable influence and better status especially in rural communities. Furthermore, the exoneration of Nam Jong-sang and Hong Bong-ju in January 1895 and the audience of Bishop Mutel with King Gojong in August of the same year constituted important backgrounds for missionaries to settle down in a local community. Meanwhile, those missionaries who settled in Korea during its Enlightenment Period treated Korean people and their culture with a Western sense of cultural superiority and recognized the Japanese rule of Korea based on the perception that the country was politically corrupt and backward, ignoring the issue of Korean independence. The missionaries took a pro-regime position in order to have freedom of religion guaranteed, although they were well aware of the difficulties of the people who had suffered exploitation and had a understanding of what Japan’s invasion did mean. Consequently, they supported the Joseon Dynasty’s regime while it was in place and accepted the Japanese rule after the forced Eulsa Treaty concluded in 1905. In conclusion, the freedom of religion and doubts about Korea’s ability to achieve independence constituted a main reason why the French missionaries ignored Korea’s national issues during the Enlightenment Period; however, the way that they looked at Korean problems as Frenchmen can be said to have underlain such perceptions.

참고문헌 (33)

  1. "대구의 사도 김보록(로베르)신부 서한집-1" (1995), 영남교회사연구소
  2. "두세 신부의 사목서한", 천주교 중림동 약현성당, ~ (2011)
  3. "뮈텔 주교 일기Ⅰ" (1986), 한국교회사연구소
  4. "뮈텔 주교 일기Ⅱ" (1993), 한국교회사연구소
  5. "뮈텔 주교 일기4" (1998), 한국교회사연구소
  6. "뮈텔 주교 일기5" (1998), 한국교회사연구소
  7. "서울교구연보(Ⅰ)", 명동천주교회, ~ (1984)
  8. "서울교구연보(Ⅱ)", 명동천주교회, ~ (1987)
  9. "천주교 왕림(갓등이) 교회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집(Ⅰ)" (1990), 천주교 왕림 교회
  10.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서한집 – 대전교구사 자료 제1집" (1994), 천주교 대전교구
  11. 한윤식, "조선교회 관례집" (2013), 토비트
  12. 김정송, "한국 가톨릭 문화활동과 교회사" (1991), 한국교회사연구소
  13. 김진소, "전주교구사Ⅰ" (1998), 천주교 전주교구
  14. 노길명, "민족사와 천주교회" (2005), 한국교회사연구소
  15. 노길명, "한국 가톨릭 문화활동과 교회사" (1991), 한국교회사연구소
  16. 노길명, "가톨릭과 조선후기 사회변동" (1988),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7. 문백란, "한말 미국 개신교계의 한국인식과 선교: 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에 나타난 한ㆍ중ㆍ일 인식 및 선교 비교", 동방학지, (171), pp.1~35 (2015), 국학연구원
  18. 박찬식, "韓末 敎案과 敎民條約-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중심으로-", 교회사연구, (27), pp.59~77 (2006), (재)한국교회사연구소
  19. 박찬식, "한국 근대 천주교회와 향촌사회" (2007), 한국교회사연구소
  20. 양인성, "한국 천주교사 연구의 성찰과 전망" (2014), 한국교회사연구소
  21. 여진천, "한국 천주교사 연구의 성찰과 전망" (2014), 한국교회사연구소
  22. 오인영, "개화기 한국과 세계의 상호 이해" (2003), 국학자료원
  23. 이만열, "한말 구미 제국의 대한 선교정책에 관한 연구", 동방학지, (84) (1994)
  24. 이원순, "한국천주교회사연구" (1986), 한국교회사연구소
  25. 장동하, "민족사와 교회사" (2000), 한국교회사연구소
  26. 장동하, "개항기 한국 사회와 천주교회" (2005), 가톨릭출판사
  27. 정연태, "19세기 후반 20세기초 서양인의 한국관", 역사와 현실, 34 (1999), 한국역사연구회
  28. 조현범, "조선의 선교사, 선교사의 조선" (2008), 한국교회사연구소
  29. 최경숙, "개신교의 선교정책과 성격", 외대논총, 25(Ⅱ) (2002), 부산외국어대학교
  30. 최기영, "뮈텔 주교의 한국 인식과 한국 천주교회 : 《뮈텔 주교 일기》를 읽다", 교회사연구, (37), pp.125~155 (2011), (재)한국교회사연구소
  31. 최석우, "한국교회사의 탐구Ⅲ" (2000), 한국교회사연구소
  32. 최석우, "한국교회사의 탐구" (1982), 한국교회사연구소
  33. 한규무, "게일의 한국 인식과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 1898~1910년을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와 역사, 4 (1995),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7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