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한국 감리교 선교사들의 성만찬 이해 - 19세기 미국 감리교회 전통으로부터 -
Understanding of the Lord's Supper by the early Methodist Missionaries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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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위 논문은 한국감리교회 초기 선교사들의 성만찬 이해에 대한 역사적 그리고 예배학적 고찰이다. 특별히 초기 미국감리교호의 선교사들의 신학형성 배경과 이를 통해서 그들이 어떠한 성만찬 이해를 형성하였는지를 살펴보고, 또한 이러한 이들의 성만찬 이해가 한국 초기 감리교회에 어떻게 전했으며,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정착되고 보급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공식적으로 최초의 한국 감리교 선교사인 Henry G. Appenzeller를 비롯해서, 프랭크 올링거, 윌리엄 스웨어러, 그리고 스크랜튼을 포함한 당시의 감리사들을 살펴보았다. 미국 펜실베니아 출신인 Henry G. Appenzeller는 Apeenzeller 가의 종교전통이었던 개혁장로교의 신앙영향과 전통19세기 미국 개신교회를 중심으로해서 일어났던 신앙부흥운동을 통하여 자신의 신앙의 고백을 이루어내며, 드류신학교의 교육을 통해서 선교사의 꿈을 가꾸었으며, 1885년 부활절 아침에 미감리교회 정회원 목사로 한국에 도착하였다. 이후에 그는 그의 여러 선교사업들 중 번역사업에 집중하였고, 이 가운데 1890년에 “미이미교회강례”라는 제목으로 당시 미국감리교회의 “장정”에 수록되어 있던, 종교강령을 프랭크 올링거와 함께 번역하여 출판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성만찬 예문을 번역, 수록하였으며, 이는 한국초기 감리교회의 성만찬 예식서로 사용하게 되었다. 서원보로 알려져 있는 윌리암 스웨어러 선교사는 “장정 개정 위원회”의 위원으로 성만찬 예문을 계속 수정 보완하는 작업을 하였다. 더욱이 그는 이 예문을 당시 신학교육 기관에서 직접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을 감당함으로 실제적인 보급작업을 하였다. 그는 이전에 이미 미국의 드류 신학교의 신학생으로 신학수업을 받을 때, 당시 그 학교의 실천신학 교수였던 Upham 교수로부터 예전학에 대한 기본적인 학습을 받았다. 이러한 초기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초기 한국 감리교회에서는 정기적인 성만찬이 있었다. 예식서에서 지도하는 매달 성만찬은 정회원 숫자의 부족과 성만찬 이해에 대한 부족으로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매년 있던 연회와 또한 계삭회에서는 성만찬이 정기적으로 행해졌다. 감리사 중 한사람이었던 스크랜튼 선교사도 비록 그가 의료선교사로 아펜젤러에 일년 앞서서 한국에 선교사로 왔으나, 정회원 목사 안수를 받은 선교사로 활동을 하였다. 그는 선교사 보고서에서 비록 짧은 글이지만, 20세기 초의 한국 감리교회의 성만찬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으며, 당시 한국인들의 성만찬 이해를 살피면서, 성만찬의 올바른 자리매김을 한국교회와 교인들에게 피력하고 있다. 한국 감리교 선교 초기 25년간 미국선교사들에 의해서 소개받은 성만찬은 그들의 노력으로 소개되고, 번역되고, 보급도 되고, 교육되었지만, 한국교회에서는 여전히 어색한 서양교회의 한 전통으로 여겨졌다. 비록 성만찬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인 의미는 한국감리교회에 소개되고, 또한 초기 한국감리교회 지도자들에게 안내되었다 하더라도, 그 예전의 행위와 그를 통한 은혜의 은총을 경험하는 실제적인 목적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