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困齋 鄭介淸 伸冤 양상 ―나주나씨 羅德明 형제의 상소를 중심으로―

To resolve the resentment of Gonjae Jeong Gae-cheong. -Based on the rumors of Na Deokmyeong br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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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본 글은 16세기 후반 호남의 나주 지역에서 향권의 주도권을 쥐고 정치적⋅사상적으로 영향력을 미친 정개청과 그의 문인인 나주나씨 일가 나덕명 형제가 동인과 서인의 갈등에서 발생한 기축옥사로 정개청이 옥사에 피화된 배경과 정개청 사후 신원을 위한 당시의 양상을 나덕명 형제의 상소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정개청은 전라도 무안의 윤암정사에서 은거할 때 나덕명 형제와 강의계로 사제 관계를 맺고, 1582년 나덕준이 나주 대안동에 서재를 마련한 뒤 훈장으로 초빙하면서 동인과 서인이 공존하는 나주에 정개청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그해 나주 향교의 훈도로 천거된 뒤 정개청은 나주의 유력사족 자제들을 지도하면서 서인의 질시를 받게 되고, 나주 최초 서원인 경현서원에 원장으로 임명되면서 동인과 서인의 갈등은 고조된다. 1589년 기축옥사의 발생으로 호남의 동인 대부분은 옥고를 치르고, 정개청도 정여립과 친분 관계, 「동한절의진한청담설」의 서술 때문에 옥사의 희생자가 된다. 기축옥사 이후 임진왜란이 발생하고 의병 활동으로 전공을 세운 나덕명 형제는 세력을 회복하며 정개청의 신원에 돌입한다. 이외에 호남 지역과 성균관 소속 유생들의 상소, 조정 강회 시간에 대신들의 신원 요청 등 조야를 막론하고 정개청 신원을 요청하여 1625년 2월 관작의 회복으로 신원이 되지만, 신원 이후 18세기 초반까지 정개청과 관련된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정개청은 대대로 한미한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학문과 사상이 조선 사회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이 미쳤는지 신원 운동을 통해 알 수 있고, 그에 대한 일조를 한 문인은 나주의 사족인 나주나씨 나덕명 형제였던 것이다.

Abstract

This article focuses on the background of Jeong Gae-cheong's death and the appeal of the Na Deok-myeong brothers, who took the initiative in the late 16th century and had political and ideological influence in Naju, Honam. When Jeong Gae-cheong hid at Yunamjeongsa Temple in Muan, Jeolla-do, he formed a student relationship with the Na Deok-myeong brothers as a teacher, and in 1582, Na Deok-jun established an academy in Daean-dong, Naju, and began full-fledged activities in Naju, where Dongin and Seoin coexist. After being recommended as the Order of Naju Hyanggyo that year, Jeong Gae-cheong was jealous of the Seoin forces by guiding the disciples of powerful scholars in Naju, and the conflict between Dongin and Seoin escalated as he was appointed as the director of Gyeonghyeonseowon Confucian Academy, Naju's first Confucian academy. Due to the outbreak of Gichukoksa in 1589, most of the dongins in Honam suffered in prison, and Jeong Gaecheong also became victims because of his close relationship with Jeong Yeo-rip and the description of the true Cheongdamseol of Donghanjeol.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the Na Deok-myeong brothers, who contributed to the war through righteous army activities, began to relieve the resentment of Jeong Gae-cheong as they restored their power. In addition, the appeals of Confucian scholars in Honam and Sungkyunkwan and the requests of officials in important positions in the country's learning time to relieve resentment, and in February 1625, the resentment was restored, but controversy continued until the early 18th century. Although Jeong Gae-cheong was poor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he was able to see how influential his studies and ideas were in Joseon society through a campaign to resolve resentment, and the writers who helped him were Naju's scholar family, Na Deok-m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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