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만년기 황상의 사회시 고찰

HwangSang’s social consciousness and poetic imagery in his latter years

0

조회

0

다운로드

2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근래에 황상의 만년기 한시 작품들이 담긴 『치원소고』가 발굴되었다. 여기에는 345수의 한시 작품들이 실려 있었는데, 그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이 사회시였다. 황상은 만년기에 산거생활을 하였는데, 그렇다고 그가 속세와의 인연을 끊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글을 깨우친 유자로서 확고한 사회의식을 지닌 시인이었다. 중인출신이었던 황상은 팔순을 바라보는 노령임에도 신분 전환과 함께 출사해서 세상을 구제할 포부를 갖고 있었다. 황상은 만년기에도 현실주의적 시각의 사회시를 남겼다. 하지만 이전에 비해 질량면에서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그는 만년기에 이를수록 이전보다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시각으로 사회적 문제를 시로 형상화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은 그가 진주농민항쟁이나 함평민란과 같은 역사적 사건을 시적 제재로 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는 민중의 시각에서 농민 항거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만년기 황상의 사회시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특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贈人>이나 <已矣哉>에서처럼 벽에 부딪친 봉건체제의 심각한 모순을 고발하거나 비판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晉州民>과 <鄭漢淳>에서처럼 조선말기 진주농민항쟁이나 함평민란과 같은 민중봉기의 역사적 사건을 제재로 그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황상의 사회시는 문학사적으로 조선후기 현실주의와 맥락이 닿아 있다. 그의 한시 작품은 조선후기 실학파 한시에서 두드러지는 현실주의적 시각을 반영하면서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19세기 민중 봉기에 대해서 정당성을 부여하였다는 것은 문학사적으로 그만의 주목할 성과로 평가된다.

Abstract

Although HwangSang had been composing social commentary poetry based on his realism philosophy, his poetry in his latter years showed a change in quantitative aspects. Also, as time went by, his literary work became more vibrant and independent. What is interesting is the fact that he brought such historical events as the Jinju peasant revolt and the Hampyeong uprising as his poetic material, legitimizing such peasant resistance from the viewpoint of the people. There are largely two noticeable aspects in the poetry of HwangSang in his latter years. One is that he unveiled and criticized a glaring contradiction of embattled feudalism of the time through his works, <To people give> and <Just finished!>. And the other is that he upheld the legitimacy of popular uprisings in the late of Joseon Dynasty, such as the Jinju peasant revolt and the Hampyeong uprising, through his works, <Jinju people> and <HanSun-Jeong>. HwangSang's social commentary poetry had a connection with realism development in the late of Joseon Dynasty because his work was a descendant of Sino-Korean poetry in Silhak School in the late Joseon Dynasty. Most of all, the fact that his poetry justified popular uprisings in the 19 century is a remarkable outcome in the history of Korean literature.

참고문헌 (22)

  1. "공자가어(孔子家語)", ~
  2. "史記", ~
  3. "치원소고(巵園小藁) 卷5·6", ~
  4. "박물지(博物誌)", ~
  5. 구사회, "새 자료 『치원소고(巵園小藁)』와 황상(黃裳)의 만년 교유", 동악어문학, (58), pp.311~341 (2012), 동악어문학회
  6. 김규선, "『치원소고』를 통해 본 황상의 차 생활과 19세기 차 문화", 동양고전연구, (46), pp.195~215 (2012), 동양고전학회
  7. 권상제, "한국 근대 농민항쟁사" (1993), 느티나무
  8. 망원한국사 연구실, "1862년 농민항쟁" (1988), 동녘
  9. 박동춘, "초의선사의 차문화 연구" (2010), 일지사
  10. 양광식, "다산제자1호 치원 황상이 받은 편지" (2010), 강진문사고전연구소
  11. 오영교, "조선후기 사회사 연구" (2005), 혜안
  12. 이철희, "茶山 詩學의 계승자 黃裳에 대한 평가와 그 의미 ―秋史·山泉의 ?園遺稿序 분석―", 대동문화연구, (53), pp.229~253 (2006), 대동문화연구원
  13. 이철희, "사회시社會詩에서 다산茶山과 치원卮園의 차이", 다산학, (12), pp.119~142 (2008), 재단법인다산학술문화재단
  14. 임형택, "丁若鏞의 강진 유배기의 교육활동과 그 성과, In 실사구시의 한국학", pp.399~434 (2000), 창작과 비평사
  15. 정민,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2006), 김영사
  16. 정민,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 (2011), 김영사
  17. 정민, "삶을 바꾼 만남" (2011), 문학동네
  18. 정민, "다산의 강진 강학과 제자 교학 방식", 다산학, 18, pp.117~163 (2001), 다산학술문화재단
  19. 정민, "새발굴 치원소고 및 치원진장에 대하여", 문헌과 해석 (2012)
  20. 진재교, "실학파와 한시 -현실주의적 성과와 민족문학적 성취, In 문학과 사회집단" (1996), 집문당
  21. 진재교, "茶山學의 形成과 ?園 黃裳", 대동문화연구, 41, pp.27~60 (2002), 대동문화연구원
  22. 진재교, "실학파와 한시 -현실주의적 성과와 민족문학적 성취, In 문학과 사회집단", pp.209~262 (1995)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8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