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대 <國朝續五禮儀補> 편찬과 왕세손 의례의 정비
The compilation of 『Gukjo Sok-O’rye’eui-bo(國朝續五禮儀補)』 and the overhaul of the oldest son of the crown prince ritual during the he period of Yeong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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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1751년(영조27) 편찬된 국조속오례의보의 편찬 과정과 구성, 수록된 왕세손 의례 내용과 그 시행 및 전례화된 내용을 통해 전례서 편찬에 반영된 영조의 의도를 파악하고, 국조속오례의보에 대한 이해를 확대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연구되었다. 탕평정치를 통해 왕권 강화의 성과를 거둔 영조는 법전과 전례서 정비를 통해 이를 가시화하였다. 속대전과 국조속오례의의 완성은 경국대전⋅국조오례의와 같이 國典 체제를 정비한 성과였다. 1744년(영조20) 국조속오례의가 완성되고 불과 7년 후, 영조는 의소세손의 책례를 준비하면서 국조속오례의보를 편찬하도록 하였다. 국조속오례의보와 그 편찬이 지니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속오례의보는 왕세자⋅왕세손 의례로 구성되었다. 왕세자 의례는 길례가 중심이었는데, 이는 종사를 계승하고 대리청정을 하고 있었던 역할을 반영한 것이었다. 반면 왕세손 의례는 명위를 확정하고 계승자로서 지위를 확인하는 가례 중심으로 정립되었다. 둘째, 국조속오례의보는 왕세손 의례가 최초로 전례서에 수록된 것이었다. 이는 이후 왕세손 의례 시행의 전거를 마련했다는 의의를 가진다. 셋째, 국조속오례의보는 국조속오례의를 보완한 전례서로 편찬되었지만, 속오례의에 누락된 의식들을 속편으로 편찬한 것이 아니라, 아직 시행되지 않은 의례를 미리 규정해 놓은 전례서였다. 넷째, 속오례의보의 왕세손 의례는 정조가 세손 시절 수행하였고, 이후 국조오례통편⋅춘관통고에 전례화되었다. 국조속오례의보는 국조속오례의를 보완한 전례서의 성격보다 왕세손 의례라는, 새로운 의례를 전례화하는 계기를 마련한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영조가 의례를 전례화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편찬한 것으로 의례 주도를 통한 왕권의 위상을 고양하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었다.
Abstract
This paper is a study to understand the 『Gukjo Sok-O’rye’eui-bo』 compiled by Yeongjo. I wanted to understand how the book was compiled, why it was written, what it contained, and how the ritual was practiced. Yeongjo consolidated its power with the Tangpyeong policy. This is evidenced by the compilation of laws and rituals. 『Gukjo Sok-O’rye’eui-bo』 is a book of rituals that was first created 『Gukjo Sok-O’rye’eui(國朝續五禮儀)』 and supplemented. 『Gukjo Sok-O’rye’eui-bo』 has the following characteristics. First, it consists of the rituals of the crown prince and the oldest son of the crown prince. The rituals of the crown prince reflected his role, and those of oldest son of the crown prince confirmed his status. Second, the royal grandchild ritual was included in the Ritual Book for the first time. It was later used as a reference for royal grandchildren to perform rituals. Third, 『Gukjo Sok-O’rye’eui-bo』 was preparing for a ritual we hadn't yet performed. This is where the previous article 『Gukjo Sok-O’rye’eui』 differed. Fourth, the royal descendant ritual of 『Gukjo Sok-O’rye’eui-bo』 was practiced when Jeongjo was the royal descendant. Therefore, it is difficult to say that 『Gukjo Sok-O’rye’eui-bo』 is a complement to 『Gukjo Sok-O’rye’eui』. Rather, it was the first of its kind as a royal grandchild ritual and paved the way for subsequent successions. It was a demonstration of Yeongjo's willingness to show off his royal power by leading the cerem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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