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訓鍊都監 설립 시 柳成龍의 역할과 운영 양상 ― 선조와 광해군조를 중심으로 ―

Yu Seong-ryong's Role in Hullyeondogam Establishment and Its Management Patterns

4

조회

0

다운로드

0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일본군의 침략으로 조선의 군사 체제와 도성 방위 체제는 붕괴되었다. 한양을 점령했던 일본군이 퇴각하면서 도성이 수복되었지만, 이미 도성의 주요 건축물은 소실되었고 치안의 부재로 혼란 상황이 지속되었다. 구원을 위해 들어온 명군은 조선의 각 처에 주둔하고 있으면서 군량만 소비할 뿐 일본군을 공격하려 하지 않았고, 일본군도 부산⋅동래 등 처에 주둔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 조정은 스스로 일본군을 격퇴할 방안을 모색하였고, 그 과정에서 유성룡은 선조에게 啓辭를 올려 군사를 모집⋅훈련하고 절강병법을 도입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했다. 이처럼 훈련도감을 설립과 훈련⋅운영 방안 등을 규정하는 데 있어 유성룡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그는 戚金을 통해 입수한 『紀效新書』의 속오법에 따라 군제를 개편하였고, 참장 駱尙志를 통해 절강병법을 도입하고자 했다. 그의 노력으로 훈련도감은 국왕 선조의 시위와 도성 방어 등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전란이 끝날 무렵 유성룡이 북인의 탄핵을 받으면서 훈련도감은 存廢의 기로에 섰다. 존폐의 갈림길에 있던 훈련도감은 광해군조에 들어와서 그 기능과 역할이 더욱 확대되었다. 훈련도감은 親兵의 임무를 수행하였는데, 광해군의 幸行시 훈련도감은 호위 업무를 수행하였다. 이 시기 훈련도감은 전쟁에 필요한 무기의 제작과 보급하는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훈련도감의 위상과 역할이 증대된 만큼 운영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훈련도감에 필요한 병력의 충원과 만성적 군량 부족은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였다. 그런데도 광해군조에 들어와 훈련도감은 중앙의 최대 군영으로 기반이 확실히 마련되었다.

Abstract

The Japanese invasion destroyed Joseon's military and provincial defense systems. The Joseon Dynasty tried to stop the Japanese army by asking Ming for military service. The Ming army recaptured Pyongyang, which was occupied by the Japanese army, but did not try to fight when it lost the Battle of Byeokjegwan. As the Ming army avoided fighting against the Japanese, Joseon had to come up with a way to attack the Japanese army on its own. In this situation, Yu Seong-ryong came up with measures to prevent the Japanese army, and in this process, the installation of a training book was discussed. Yu Seong-ryong played a very important role in the establishment and operation of the Hullyeondogam, and even after his demise, he remained the largest military camp in the late Joseon Dynasty. Gwanghaegun was thoroughly prepared for the threat of the future. In this process, the role and function of the Hullyeondogam were further expanded, and the actual increase of military power was also made. However, the training of loyal elite soldiers and the provision of sufficient operating expenses remained an eternal homework. Despite these operational problems, Hullyeondogam became the largest military camp in the late Joseon Dynasty.

참고문헌 (33)

  1. "光海君日記", ~
  2. "芹曝集", ~
  3. "宣祖實錄", ~
  4. "辰巳錄", ~
  5. 이재호, "국역 진사록" (2001), 서애선생기념사업회
  6. 원창애, "『역주 훈국등록』 1" (2017),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7. 이성주, "『정서 훈국등록』 1" (2017),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8. 유성룡, "징비록" (2022), arte
  9. 김종수, "朝鮮後期 訓鍊都監의 設立과 運營" (2003), 혜안
  10. 차문섭, "朝鮮時代軍制硏究" (1973), 단대출판부
  11. 한명기,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2001), 역사비평사
  12. 곽낙현, "조선후기 숙종대 『훈국등록』을 통해 본 시재(試才) 검토", 동양고전연구, (85), pp.163~187 (2021), 동양고전학회
  13. 김우철, "朝鮮後期 束伍軍 給保·給復策의 推移", 全州史學, 4 (1996)
  14. 金友哲, "조선후기 속오군제 연구", 박사, 사학, pp.1999
  15. 김종수, "숙종시대의 군사체제와 훈련도감" (2018),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16. 金鍾洙, "朝鮮後期 訓鍊都監의 設立과 運營", 박사, 국사학, pp.1996
  17. 김종수, "훈련도감 설치 및 운영의 동아시아적 특성", 藏書閣, (33), pp.26~58 (2015), 한국학중앙연구원[DOI]
  18. 李謙周, "朝鮮後期 束伍軍 : 그 成立을 중심으로", 석사, pp.1970
  19. 이홍두, "束伍軍을 통해 본 朝鮮後期 賤人의 身分運動", 軍史, 34 (1997)
  20. 서태원, "束伍軍의 設置意義에 대한 硏究", 論文集, 13 (1993)
  21. 송정숙, "17세기 훈련도감의 인쇄․출판 활동", 서지학연구, (42), pp.267~298 (2009), 한국서지학회[DOI]
  22. 심재우, "조선후기 訓鍊都監 軍法의 특징과 梟示刑의 집행 양상", 군사, (101), pp.303~332 (2016),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DOI]
  23. 염정하, "장서각 소장 군영 자료로 본 조선 후기 삼군영의 군사 복식 보급", 藏書閣, (42), pp.38~65 (2019), 한국학중앙연구원[DOI]
  24. 우정훈, "庚午字體訓鍊都監字本의 書誌的 硏究", 서지학연구, (74), pp.187~206 (2018), 한국서지학회[DOI]
  25. 임성수, "17~18세기 訓鍊都監 給料와 三手米의 운영", 韓國史學報, (80), pp.81~115 (2020), 고려사학회[DOI]
  26. 장준호, "芹曝集의 자료적 검토", 지역과 역사, (49), pp.215~253 (2021), 부경역사연구소[DOI]
  27. 장필기, "17世紀 前半期 束伍軍의 性格과 位相", 사학연구, 42 (1990)
  28. 정구복, "장서각 소장 군영자료의 성격과 가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대한 제언", 藏書閣, (33), pp.12~25 (2015), 한국학중앙연구원[DOI]
  29. 정해은, "장서각 소장 군영등록류 자료에 관한 기초적 검토", 장서각, 4 (2000)
  30. 차문섭, "宣祖朝의 訓鍊都監", 史學志, 4 (1970)
  31. 최완기, "朝鮮 後期 訓練都監의 賃運活動", 서울시립대학 논문집, 19(1) (1985)
  32. 최주희, "균역법 시행 전후 훈련도감(訓鍊都監)의 재원확보 양상", 역사와 현실, (102), pp.33~80 (2016), 한국역사연구회
  33.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URL]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2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