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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談思想의 형성 과정과 의미(1)

A Meaning and Formation Process on the Qingta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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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철학

초록

이 논문은 청담사상의 형성 과정과 그 의미에 대해 사상사적 관점에서 전개한 글이다. 유교적 정치 문화가 지배했던 거대한 한나라가 멸망하면서 도가적 문화 예술이 지배한 위진남북조의 긴 혼란기가 있었다. 옛 왕조가 무너지고 새 왕조가 들어서면서 모든 면에서 총체적인 변화가 일어났는데, 이 글은 그 중에서 사상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했다. 그러나 사상의 변화 속에는 정치경제사회 등 현실의 변화가 반영되어 있다. 먼저, 사회적 변화의 가장 큰 특징은 귀족제의 성립이라고 볼 수 있다. 향론에 근거해서 관직에 임명하는 구품중정제(구품관인법) 실시에 따라 관직의 세습화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귀족 가문들이 등장했다. 귀족들은 높은 관위를 유지하면서도 실제적인 사무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한가하게 도가풍의 담론을 즐기며 그것을 명예롭게 생각했다. 그 다음 정치면에서는 한말의 당고사건이 큰 분수령이 되었다. 동한 중엽부터 어린 황제들이 즉위함에 따라 그 외척들이 섭정을 함으로써 왕과 갈등이 일어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환관을 끌어들였다. 그런데 환관들은 외척보다도 전횡이 심했다. 그래서 이들에게 대항하는 새로운 집단이 생겨났다. 그들은 바로 사대부관료태학생들이다. 이들은 청의의 형식을 빌어 저들을 비판했다. 이 과정에서 두 차례의 당고사건이 일어나 많은 희생이 따랐다. 이런 혼란이 계속되는 사이에 황건기의가 일어나 동한이 멸망하고 위촉오 삼국이 정립되었다. 그러나 혼란은 계속되었고, 위나라에서는 조씨와 사마씨의 정권 투쟁에서 많은 학자들이 또 다시 희생되었다. 이렇게 되자 학자들은 현실 비판적인 청의를 버리고, 초현실적이고 형이상학적 담론인 청담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마지막으로 사상적 변화를 살펴보면, 한대의 번쇄한 경학에서 벗어나 의리지학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당고사건으로 많은 경학자들이 희생되었을 뿐만 아니라, 통치자들의 미움을 산 경학(자들)이 더는 관직에 오르는 수단적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번쇄하기만 하고 미신적인 경학이 사람들에게 외면당했다. 그러자 유학 자체가 거부되고, 대신 주역과 노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렇지만, 그 변화는 점진적이어서 초기에는 도가적 입장에서 유도를 종합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점차 도학 쪽으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청담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후한 시대에는 향리에서 인물 품평으로 관리를 선발하였다. 이것을 청의라고 한다. 청의의 기준은 명교였다. 청의는 뒷날 현실을 비판하는 정치 평론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두 차례의 당고사건과 위나라 때의 정권 다툼에서 많은 희생과 피해를 입은 사대부들은 가능한 현실을 초월한 우아하고 고상한 담론을 즐겼으니, 그것이 이른바 청담이다. 청담의 근거와 자료는 상당 부분 三玄에서 취했다. 청담은 현실 도피적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심미적 안목을 넓혀주었고, 자유와 개성을 강조함으로써 중국인들로 하여금 자아 의식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 그리고 육조 시대를 춘추전국 시대 못지 않은 화려한 문화 예술의 시대가 되게 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청담의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Abstract

A Meaning and Formation Process on the Qingta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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