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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韓內 高句麗 古墳의 檢討

Reviews on Tombs of Goguryo Located in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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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남한내 분포하는 고구려 고분의 현황을 정리하고 분포양상과 입지, 구조와 축조방법, 출토유물 등의 검토를 통해 고구려 고분의 특징을 살펴 본 것이다. 남한지역의 고구려 고분은 대체로 하천을 따라 형성된 교통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한강유역과 임진강유역 등 큰 하천의 북안 또는 강과 지류천이 만나는 합류지역 중에서도 북쪽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하천과 강 주변에 형성된 자연 교통로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고구려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분의 입지는 완만한 구릉 경사면에 입지하는 경우와 경사면 말단부에 이어지는 평탄면에 입지하는 경우가 있다. 밀집도는 한 유적당 보통 1∼2기가 대부분이며 충주 두정리 고분만 6기가 횡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는 해당 지역에 대한 고구려의 지배 시기가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유적에 비해 비교적 밀집 분포하는 충주 두정리 고분의 조영은 충주지역이 가지는 군사적이고 지리적인 중요성과 철의 생산이라는 요인과 어느 정도 관련성을 가질 것으로 생각된다. 남한내 고구려 고분은 모두 연도를 갖춘 지상식 또는 반지하식의 橫穴式구조이며, 한 개의 봉분에 2개의 석실을 마련한 쌍실분이 화성 청계리 고분과 성남 판교동 고분에서 확인되고 있다. 석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인 護石은 마련되지 않았으나 周溝의 경우는 여러 유적에서 발굴되었다. 연도는 고분에 따라 방향에는 차이가 있으나 석실 남벽의 중앙에 연도를 개설한 춘천 천전리 고분과 연천 신답리 2호분을 제외하고 대체로 우편연도의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석실 바닥은 시상대를 갖춘 경우와 불다짐 처리한 경우 그리고 불다짐한 후 시상대를 설치한 사례가 남아있다. 고분 유적에서 출토되는 고구려의 유물은 매우 빈약하다. 토기류는 용인 보정동 고분, 화성 청계리1호분과 충주 두정리 2·6호분 등에서 1점씩 출토되었다. 이들 토기류는 구연이 외반된 형태로 주로 고운 니질의 점토를 태토로 사용한 점, 문양을 타날하고 물손질하거나 마연하여 문양을 지운 점, 바닥이 평저인 점 등 기형과 제작상의 양상 등으로 볼 때 고구려 토기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타 유적 자료와 비교하면 토기의 제작시기는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초반경으로 잠정할 수 있다.

Abstract

This thesis summarized the current state of the tombs of Goguryo located in the South Korea and reviewed the characteristics of the tombs through the reviews on distribution pattern, location, structure, construction method, and the relics found in the tombs. In most cases, the tombs of Goguryo in South Korea are closely related to the transportation route that was formed along with the rivers. Most of them are located in the North coastal area of a big river such as basin of Han River or Imjin River, or the North region of the junction part where river and small branch streams are met. It was assumed that the power of Goguryo could be spread mainly along with such regions where natural transportation roads were formed nearby rivers. The tombs were located on the slope side of gently rolling hills or on the plain site that was extended from the end part of the slope. As for the density, 1-2 tombs were located in one place in most cases. For exceptional case, there are 6 tombs side by side in Doojeong-ri, Chungju. It is because in this region, the dominance period by Gogoryo Kingdom was relatively short. However, it is assumed that the dense distribution are somewhat related to its military and geographical importance and to the fact that the region produced iron. All the tombs of Goguryo in South Korea are equipped with tunnel entrance on the above-ground or half-below ground. We found twin-style tombs, where two stone chambers were located in a tomb. They were found in Cheonggye-ri, Hwasung and Pangyo-dong, Sungnam, respectively. There was no Hoseok, which was the stone fencesurrounding the tomb to protect stone chamber, but small drains surrounding the tombs were found in many relics. The direction of tunnel entrance of the tomb varies according to the tombs, but most of them have the tunnel entrance at the right side of the tomb, except for the two tombs of which tunnel entrances are located at the center of south wall of the stone-wall chamber. They were the tomb of Cheonjeon-ri, Chuncheon and that of Sindapri the 2nd, Yoncheon. As for the floor of the stone chamber, some were equipped with Sisangdae which was the space where a body was placed, some were hardened by fire-treatment, and some had Sisangdae after the fire-treatment. There were few relics of Gogoryo excavated in the tombs. Each one ware was found in the tomb of Bojeong-dong, Yongin, in the tomb of Chonggye-ri, the 1st in Hwasung, and in the tomb of Doojeong-ri the 2nd and in the 6th, Choongju, respectively. Those wares were made of fine clay with wide top. The patterns that were carved by striking method with a wooden tool and removed with water- touch or scrubbing, and the bottom of wares were plain. Such shape of ware and production method hows the properties of ware of Goguryo quite well. Compared to the data on other relics, it is assumed that the wares were made in the late 5th or early 6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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