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 보루군의 변천사와 고구려 남진경영
The History of Fortresses in the Achasan mountain and Southward expansion of Gogur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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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통상적으로 고구려의 영역은 그 지역에 위치하는 고구려 성의 有無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고구려의 영역으로 당연히 인식되는 지역에서 고구려 성이 확인되지 않았을 때 문헌사료와 고고자료간 모순이 발생하게 되고, 그 경우 대부분 더 넓고 큰 지도를 그릴 수 있는 증거들을 선택해서 영역을 표시하는 쪽을 취해왔다. 아차산 일대를 비롯한 한강유역은 『삼국사기』 「지리지」에 의하면 고구려의 영역으로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고고자료가 거의 확인되지 않은데다가(기록의 乖離) 문헌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는 堡壘라고불리는 소형 관방시설이 집중적으로 확인되는 지역이다(기록의 不在). 즉, 고구려 전성기로 알려져 있는 광개토태왕~장수태왕 재위기(4~6세기)에 새롭게 확보한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고고자료로는 그 실체를 분명히 알수 없고 금석문과 문헌사료를 통해서만 그 흔적이 일부 확인되는 지역인 셈이다. 고구려는 몽촌토성과 안성 도기동산성 등 백제의 기반시설을 토대로 군사 작전을 펼치다가, 이후 한강 북안의 아차산 보루군을 거점으로 해당 지역을 經略하기 시작한다.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고자했던 고구려는 보루군을 중심으로 군사거점 확보와 교통로 장악을 통한 광역에 걸친 군사작전범위 확보에 주력했다. 이를 바탕으로 빠르게 영역을 확보할 수 있었고, 그 결과 100여 년이라는 기간 동안 남부전선에서 삼국정립이 이루어졌다. 서울-경기 지역에서 뚜렷한 영역화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아차산 보루군을 통해 전성기 고구려의영역 변천사를 파악할 수 있다. 오늘날 그 의미를 지나치게 과장할 필요도, 축소할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고구려 전성기의 위상을 파악하는데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재차 강조하고자 한다.
Abstract
It is generally understood that the area of Goguryo is closely related to the presence of Goguryeo in the area. However, when the Goguryeo province is not identified in the area of Goguryeo, it is a contradiction between the documentary and the archaeological data. In that case, most of the time, I have been drunk. The Han River basin, including the area of Achasan, is located in the Koguryeo area according to the 「geography」(地理志) of 『Samguksagi』(三國史記), but the related archaeological data are rarely confirmed. This is an intensively confirmed area (absence of records). In other words, despite the fact that it was newly acquired in the Gwanggaeto Emperor(廣開土太王)~Jangsu Emperor(長壽太王) re-crisis(4~6th century), which is known as Goguryeo’s heyday, it can not be known clearly from the archaeological data. It is the area where it is. Goguryeo is based on the Baekje base such as Mongchon Satosung and Anseong Doigi-dong Acid, and after that it begins to abbreviate the area based on the Borac of Achasan in the bank of Han River. Goguryeo, who wanted to get the maximum effect with minimal investment, focused on securing military bases around the Boru army and securing a range of military operations across the country by taking control of traffic. As a result, the region could be secured quickly. As a result, the three countries were established in the Southern Front for over 100 years. Although there is no evidence of a definite zoning in Seoul-Gyeonggi area, it is possible to grasp the history of Goguryeo during the peak period through the Achasan Boru group. I would like to emphasize again that it is not enough to grasp the status of Goguryeo’s heyday in the present day by simply understanding what it is, without needing to exaggerate it too much and to reduc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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