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鐵 유통에 대한 시론적 검토
A Pilot Study on the Iron Distribution of Gogur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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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은 고대국가의 핵심자원이었으므로 국가에서는 철 원료의 획득부터 가공과 유통에 대해 철저히 관리했을것이다. 본고는 이러한 전제 아래 고구려의 철 유통을 시론적으로 살펴본 글이다. 고구려의 대표적인 제철유적으로는 북한의 노남리 남파동 유적과 황해도 장수산성, 한국의 아차산 3보루와 무등리 2보루, 중국의 蓋州市 靑石嶺山城(=高麗城山城) 및 집안시 北屯村의 北頭東南 유적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모두 제철로가 출토된 유적이므로 제철작업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주요 철산지는 중국의 개주시·대석교시· 안산시·요양시·본계시·통화시·임강시·집안시의 입자구와 대천촌, 북한에서는 함경북도 회령, 황해도 은율·재령, 한국은 충주시로 파악했다. 이들은 전근대 사료에 철산지로 기재되거나 현대에도 풍부한 철광산이 있는 곳이다. 철의 유통은 유적의 출토 양상을 통해 살펴보았다. 청석령산성은 제련로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곳은 漢代 鹽官과 鐵官이 배치된 지역인 만큼 고구려 때에도 주변지역의 소금과 철 공급을 관할했을 것이다. 북두동남 유적은 충주 칠금동 유적과 입지 등 양상이 유사한 점으로 보아 제련을 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인근에서 철 원료나 가공된 철을 받아 재가공한 후 혼강, 부이강, 신개하 수로를 따라 주변 지역으로 유통했을 것으로보았다. 장수산성은 타 지역으로부터 괴련철 등을 받아 정련·단조하여 산성에서 필요한 鐵器를 만든 2차 이후의가공지로 파악하였다. 아차산 3보루, 무등리 2보루, 노남리 남파동 유적은 인근에 철산지가 없고 최전방의 군사시설 및 생활유적이라는 점에서 철제품의 수리를 진행했던 최종 소비지로 파악했다. 고구려에서의 철 유통은 수도운영 및 방어체계와도 관련되어 있다. 고구려의 역대 수도는 모두 인근에 대규모철산지가 없으므로 타지역으로부터 철 원료 혹은 가공된 철을 들여와 사용하였을 것이다. 고구려의 수도 선정에는 물자의 수송을 중시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한편 철 확보가 용이했던 요동지역은 대량의 산성을 축조했으나그렇지 못했던 한강유역 등에는 堡壘만 조성했는데, 여기에는 전략적·정치적·지리적 요소와 더불어, 철제 무기류의 원활한 제작 및 보급 여부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Abstract
Since iron was a key resource in ancient countries, the state would have thoroughly managed the processing and distribution of iron materials from the acquisition of iron materials. This paper is a poetic look at the iron distribution of Goguryeo under this premise. The representative iron relics of Goguryeo include the ruins of Nampadong in Nonamri, North Korea, Jangsusanseong Fortress(長壽山城) in Hwanghae-do Province, Achasan Fort No.3 and Mudeung-ri Fort No.2 in South Korea, and Qingshiling Fortress(靑石嶺山城), historic remain of Beitoudongnan(北頭東南) in Beituncun(北屯村) of China. All of these are relics from which steel was excavated, so it can be seen that steel work was carried out. The major iron production areas were Gaizhou, Dashiqiao(大石橋), Anshan(鞍山), Liaoyang(遼陽), Benxi(本溪), Tonghua(通化), Linjiang(臨江), and Dachuancun(大川村), Hoeryeong(會寧) in Hamgyeongbuk-do Province, Eunyul(殷栗), Jaeryeong(載寧) in Hwanghae-do Province, and Chungju in South Korea. These are listed as iron-producing areas in pre-modern historical records, or there are abundant iron mines in modern times. The distribution of iron was examined through the aspect of steel. Considering the excavated patterns of Qingshiling Fortress, it is highly likely that there was a smelting furnace. Since this is an area where the Han Dynasty were located Salt and iron Officer(鹽鐵官), it would have been in charge of the supply of salt and iron in the surrounding area during the Goguryeo period. It is possible that the historic remain of in Beitoudongnan was smelted because it was similar in terms of location to the ruins of Chilgeumdong in Chungju and even if not, it was reworked by receiving iron materials or processed iron nearby and distributed to the surrounding areas along the Hunjiang River(渾江), Fu'erjiang River(富爾江), and Xinkaihe River(新開河). Jangsanseong Fortress was identified as a post-second processing site. Considering the size of the fortress and its transportation routes, it is believed that the fortress was made by refining and forging it by receiving processed iron from other regions. The ruins of Achasan Fort No.3 and Mudeung-ri Fort No.2, and Nampadong, Nonam-ri, were identified as the final consumption sites for repairs of iron products in that there are no iron producing areas nearby and are military facilities and living relics on the front line. Iron distribution in Goguryeo is also related to the the location of the capital and operation and defense system. All of Goguryeo's former capitals did not have large-scale iron producing areas nearby, so iron raw materials or processed iron would have been imported from other regions. It is presumed that the selection of Goguryeo's capital emphasized the transportation of goods. On the other hand, the Liaodong(遼 東) area, which was easy to secure iron, built a large number of fortresses, but only the Hangang River basin, which was not, was built, which would have been affected by the smooth production and distribution of iron weap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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