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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관료 조현명의 정치적 공간, 해촌(海村)

Hae-Chon, The Political Space of the Bureaucrat Cho Hyun-myung in 18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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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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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8세기 관료 조현명의 별서가 위치했던 공간인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해촌)을 조현명의 정치적 공간으로 규정한 논문이다. 본 논문의 Ⅱ장에서는 조현명이 해촌에 별서를 마련하고 그곳을 이용했던 양상을 설명하였고, Ⅲ장에서는 조현명의 별서 이용 행위의 의미를 분석하였다. 이를 통하여 해촌의 별서가 조현명에게정치적 공간의 의미를 가진 공간이었다는 해석을 Ⅳ장에서 진행하였다. 더 나아가도성 밖 경기 지방에 근거지를 마련한 관료들의 행위가 가지는 정치적 의미를 추론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확대하였다. 조선후기 관료들은 도성과 가까운 경기도 일대에별서를 마련하고 주거와 풍류 휴식 등의 용도로 이용하였다. 이러한 별서의 이용 방식은 그동안 탈정치적이고 탈속적인 ‘은거’의 경향 속에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조현명의 해촌 별서 이용 양상과 그 의미를 분석함을 통하여 당대 관료들의별서가 가지는 의미는 지극히 정치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은거' 라는 행위가 탈정치적이거나 탈국가적인 개념이 될 수 없음을 살펴볼 수 있다.

Abstract

This study is a paper that defines the space of Haedeungchon-myun YangjumokGyeonggi-do where Byeolseo of Cho Hyun-myung, a bureaucrat in the 18th century,was located as a political space. To this end, this study explains the aspect of settingup Byeolseo of Cho Hyun-myung and its use and aims to examine the meaningof space to Cho by analyzing the meaning of such an act. Furthermore, this studyexpands the discussion in a way of inferring the political meaning of the act ofbureaucrats who established the base in Gyeonggi province, outside of the capitalcity. The bureaucrats in the latter part of the Joseon Dynasty set up Byeolseo inGyeonggi province close to the capital and used it for residence and relaxation. The use of Byeolseo has been understood in the tendency of seclusion, which ispost-political and post-secular. However, according to the analysis of Cho’s useof Byeolseo and its meaning, it can be said that the meaning of Byeolseo of thebureaucrats in the past was notably political. In addition, this study reveals thatthe act of seclusion cannot be seen as a concept of post-political or post-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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