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의 해방 전후 야담 활동: 출판인-야담가의 위상과 야사연구회의 존재
Kim Song’s Yadam Activities Before and After Liberation : The Status of the Publisher-Yadamer(야담가) and the Existence of the Yasa Research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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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김송의 해방 전후 야담 활동에 관해 다룬다. ‘백민 시절’에 투사된 그의 회고담은 몇 차례의 변주 속에서 『대한일보』의 「나와 백민 시대」 및 『신동아』의 「자전적 문예 반세기」를 통해 과거사와 접목한다. 여기서 해방 전 야담 활동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비로소 그 생애사의 일단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김송 작고 직후 생애 연구의 선구적인 작업을 수행한 임무출은 연도 추적의 어려움을 표하며 후속 과제를 남겨놓았는데, 이 글은 여기에 대한 아주 늦은 응답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김송이 야담사를 언제 인수했는지는 『야담』 잡지에서 그 단서가 발견된다. 1941년 9월 사장으로 취임했음을 「편집후기」에서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야담』 종간은 1945년 2・3월 합병호로 조선어 매체 가운데 해방 직전까지 발간된 드문 잡지였다. 하지만 야담사 인수에서 폐업까지 그의 회고록과 물증 사이의 틈새는, 이에 대한 혼란을 빚어내며 연구의 사각지대로 남겨졌다. 이 글은 김송의 야담사 인수가 해방 후사인 ‘백민 시절’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해방 전 야담집의 재출간으로 되짚음과 동시에 선행연구의 최초 발굴과 같은 오독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해방 전후사를 아우르는 시좌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공적 단절의 시간만큼이나 개개인의 삶을 틀 짓는 연속성의 측면에서 이 글은 ‘백민문화사’의 그늘에서 야담집 재출간의 통로가 된 ‘야사연구회’의 존재를 저 망각의 터널에서 끄집어내어야 함을 결론 삼아 제시하였다.
Abstract
This article discusses Kim Song’s Yadam activities before and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His memoirs, reflected during the ‘Baekmin era,’ intertwine with the past through several variations in “Me and the Baekmin Era” from the Daehan Ilbo and “Half a Century of Autobiographical Literature” from Shin Dong-A. The stories about his Yadam activities before liberation reveal part of his life history. Lim Moo-chul, who conducted pioneering research on Kim Song’s life immediately after his passing, noted the difficulty of tracing the years, leaving future tasks behind. This article serves as a very late response to those tasks. Clues about when Kim Song assumed the role of president of Yadamsa can be found in Yadam magazine, which indicates he took on the role in September 1941. Additionally, the final issue of Yadam, a rare magazine published in Korean until just before liberation, was a combined February-March 1945 issue. However, the gaps between his memoirs and evidence from the acquisition of Yadamsa to its closure remain a research blind spot. This article emphasizes the inseparable connection between Kim Song’s acquisition of Yadamsa and the Baekmin era, underscoring the necessity to expand the perspective to encompass the history before and after liberation to eliminate the possibility of misinterpretation, such as with the initial excavation, in existing research. It concludes that the existence of the Yasa Research Association, which served as a conduit for the republication of Yadam collection under Baekmin Cultural History’s shadow, must be brought out of the tunnel of obliv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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