澹溪 金瑞慶의 磻溪學 계승과 經世意識
Kim Seo - kyung’s Succession of Bangyehak and Philosophy of Govern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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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사회 경제적으로 위기를 직면하였다. 당시 학자들은 성리학에 대한 치밀한 연구보다는 국가와 사회의 개혁을 통한 안정을 도모하려 하였다. 그 중심의 인물이 바로 유형원(柳馨遠)이었다. 유형원은 32세 때 호남 부안 우반동에 정착하여 제자 양성보다는 국가와 사회의 부조리를 개혁하는 학문과 저술에 전념하였다. 이러한 활동 때문인지 몰라도 그의 문인들은 많이 언급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알려진 담계(澹溪) 김서경(金瑞慶: 1648∼1681)의 유고집으로 인해 김서경이 유형원의 학문을 계승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김서경은 부안 우반동에서 유형원을 모시면서 11년 동안 수학하였다. 스승 유형원을 만나기 이전, 성리학적 실천을 지향하면서도 고대 동양 역법의 기초이론으로 불리는 ‘기삼백(朞三百)’을 혼자 풀어내 수리 능력을 보이기도 하였다. 16세 때 유형원에게 나아가 학문을 익힐 적에, 그는 스승으로부터 『중용』의 박학(博學)⋅심문(審問)⋅신사(愼思)⋅명변(明辨)의 방법, 『대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 『논어』의 박문약례(博文約禮)라는 학문적 방법을 배양하였다. 이러한 방법으로 학문에 매진하다보니 자연 과거공부에 전념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친의 간곡한 권고로 향시에 합격한 다음, 33세 때 성균관에서 과거시험을 준비하다가 병을 얻어 귀향한 지 얼마 안되어 1681년 34세의 일기로 삶을 마감하였다. 본 글은 김서경이 남긴 『담계유고(澹溪遺稿)』를 통해 그의 반계학 계승과 경세의식을 살펴본 것이다. 그 내용은 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첫째, 김서경은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기에 생애와 저술을 많이 다루었다. 둘째, 유형원에게 나아가 11년 동안 학문을 익히며 반계학(磻溪學)을 계승하였지만 유형원과 같이 사회개혁을 지향한 글보다는 심의 참다운 수양을 통해 성인(聖人)을 지향하려는 의식이 강하게 드러내고 있어 이를 다루었다. 사회개혁에 대한 글이 전무한 것은 아마도 그가 요절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 “백성을 포용하고 대중을 기른다[容民畜衆]”는 경세의식을 살펴본 것이다. 이 의식 속에는 의식주에 모자람이 없도록 하여 육체를 기르고 인륜 도덕을 가르쳐서 정신을 길러야 한다는 양면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위정자가 “때에 따라 마땅함을 헤아린다”는 의식을 통해 백성을 포용하고 대중을 기르도록 하는 것이었다. 김서경의 반계학 계승을 통한 경세의식은 양란으로 인한 위정자의 윤리의식의 결여를 극복시켜 유학의 주체적 인간상을 회복시키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사상사적 측면에서 보면 실학의 초기 단계의 경세치용적 윤리관을 제시하는 양상이 강하다 할 것이다.
Abstract
By the mid-17th century, Chosun was in a social and economic crisis. Scholars turned away from theoretical studies of Neo-Confucianism to studies of governance in order to reform the society and stabilize the lives of the people. Kim Seo-kyung(金瑞慶: 1648∼1681) found home in Buan and studied under Yoo Hyung-won(柳馨遠) who sought to reform the irregularities of the society. Kim had begun with studies in his home town, focusing on Neo-Confucian practice. After he met Yoo, following in the rigorous methodology of Yoo, Kim shifted focus of his academic works from studying for civil service entrance examination to self-development aimed at becoming a virtuous man. Unfortunately, Kim’s life was cut short at 34 years and he could not further expand his research. This study examines Kim Seo-kyung’s Damgyeyugo(澹溪遺稿) in order to see how he succeeded the tradition of Bangyehak(磻溪學: ideology of Bangye) as well as his philosophy of governance. The author does this in three ways. First, since Kim Seo-kyung is a little-known figure, his life and works are introduced. Second, Kim’s succession of Yoo Hyung-won’s ideas is examined, especially his aspiration to a virtuous man through the real self-discipline of the mind. Third, the study explores his philosophy of governance which sought to embrace the people and foster the public. Kim Seo-kyung’s succession of Bangyehak and philosophy of governance can be understood as an effort to rebuild a moral awareness, which had been eroded by Injin and Byungja Wars, so as to restore the Confucian autonomous agency. Hence, in terms of the history of ideology, this follows in the practical morality of the early forms of realist 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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