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시대 움집의 복원과 의미
The Restoration and Meaning of Neolithic Dwellings
0
조회
0
다운로드
9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신석기시대 연구의 주된 핵심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복원하는데 있다. 신석기인들에게 의식주는 가장 중요하고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그 중에서 집자리는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한 기본토대를 마련하는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에 신석기시대 집자리를 대상으로 하여 움집의 가구방식을 추론해 보고, 복원사례 검토를 통해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하여 우리나라의 지역별ㆍ시기별 대표적인 유적의 집자리를 선정하여 복원을 시도해 보았다. 복원작업은 Rhinoceros program을 사용하였으며, 이 프로그램은 최근 많이 사용되고 있는 3D를 통한 입체적인 표현과 다양한 시각적인 효과를 연출해 낼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신석기시대 움집의 상부구조는 무주식-뿔형에서 보강기둥식-뿔형, 그리고 기둥식-뿔형(용마루형)으로의 변천과정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이중도리식-뿔형은 집자리의 평면을 방형으로 유지하면서 두 방향으로 평면을 확장할 수 있는 구조로 방형에서 장방형 평면의 구조로 넘어가는 과도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기둥과 도리의 사용에 따른 구조의 발달은 평면의 확장을 가능하게 하여 장방형 움집을 짓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지붕의 형태도 맞배나 우진각 등으로 다양해졌다. 결국 신석기시대 움집은 이른 시기에는 원추형 혹은 사각추형의 지붕구조를 보이다가 중기에 이르면 지붕의 서까래가 지표에서 떨어지는 구조로의 변화가 나타난다. 이는 집자리의 입지 변화와 함께 대형 장방형 집자리의 본격적인 등장(대천리식, 송죽리식 집자리 등) 혹은 방형의 정형화된 4주식 집자리의 등장과 맞물려 일어난다. 이러한 변화는 집자리의 입지에 따른 생계방식의 변화와도 관련된 것으로 판단된다.
Abstract
The core aim of Neolithic studies has been to restore the lifestyle of people at that time. For Neolithic people, obtaining food, clothing and shelter were the most important and urgent issues, and establishing dwellings was an important task which provided the basic conditions for life. Targeting dwellings of the Neolithic period, we examined the layout of furniture in these pit houses, and attempted restoration. We selected dwelling structures which were typical of the different regions and periods of the Korean Neolithic in undertaking restoration. The restoration work was done using the Rhinoceros program. This program has features that can give three-dimensional effects, which have recently been used intensively, and can give a variety of visual effects. The roof structure of the Neolithic pit dwellings was conical or shaped like a quadrangular pyramid in the early period. In the middle period, the rafters of the roof came to be raised above ground. This coincided with a locational change in dwelling sites, which was also accompanied by the emergence of large rectangular houses or typical square houses with four posts. This change appears to be related to a change in the way of living which was influenced by the location of the dwelling sites.
참고문헌 (27)
- 구자진, "옥천 대천리의 신석기시대 집자리 연구", 한국상고사학보, 47(47), pp.5~36 (2005), 한국상고사학회
- 구자진, "한국의신석기시대집자리" (2009), 한국신석기학회ㆍ한강문화재연구원
- 국립중앙박물관, "암사동" (1994), 국립중앙박물관
- 기전문화재연구원, "시흥 능곡택지개발지구내 능곡동유적 발굴조사", 현장설명회자료 (2007)
- 김도경, "한국 고대 목조건축의 형성과정에 관한 연구", 박사, 건축공학과, pp.2000
- 김도경, "신석기시대 움집의 구조와 변천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논문집, 14(10), pp.177~186 (1998), 대한건축학회
- 金載昊, "韓國 靑銅器時代 住居構造의 復原", 영남고고학, (39), pp.45~70 (2006), 영남고고학회
- 김진희, "한반도 신석기시대 주거지에 관한 연구-중서부지역 주거복원을 중심으로-", 석사, 고고미술사학과, pp.2008
- 김홍식, "선사시대 살림집의 구조에 대한 연구(가설)", 문화재, 11, pp.76~102 (1977), 문화재관리국
- 김홍식, "사동움집복원고", 문화재, 18, pp.41~57 (1985), 문화재관리국
- 도유호, "궁산원시유적발굴보고" (1957), 과학원출판사
- 배성혁, "김천송죽리유적Ⅰ" (2006), 계명대학교행소박물관
- 신상효, "청동기시대 주거지의 복원적 고찰", 석사, 건축공학과, pp.1996
- 암사동 수혈주거지 복원기초조사 보고서, "암사동유적발굴조사단", 암사동유적 발굴조사단, ~ (1984)
- 예맥문화재연구원, "양양 여운포-송전간 도로개설부지내 유적 발굴조사 2차 지도위원회의 자료" (2007)
- 오규진, "청동기시대 주거지 복원 및 실험 -전기주거지를 중심으로-", 야외고고학, (1), pp.175~201 (2006), 한국문화재조사연구기관협회
- 윤원태, "한국의전통초가" (1998), 재원
- 이남석, "계룡면 용동리 신석기시대 주거지", 한국신석기연구, 18, pp.219~234 (2009), 한국신석기학회
- 이상복, "영종도 운서동 신석기시대 유적", 『 영종도의 고고학』인천학 학술대회자료집, pp.21~34 (2010), 인천학연구원
- 이필우, "한국산목재의성질과용도" (1997), 서울대학교출판부
- 이현석, "수혈건물의 폐기양식", 발굴사례 연구논문집, (창간), pp.73~114 (2004), 한국문화재조사연구기관협회
- 임영진, "움집의분류와변천", 한국고고학보, 17, pp.107~162 (1985), 한국고고학회
- 장기인, "목조" (2003), 보성각
- 조형래, "수혈주거의 벽과 벽구에 관한 연구", 석사, 건축공학과, pp.1996
- 인천운서동유적-신석기시대취락유적의조사-, "중앙문화재연구원", ~ (2008)
- 한창균, "옥천대천리신석기유적" (2003), 한남대학교중앙박물관
- Fitch. J. M, "Primitive Architecture and Climate", pp.230~236 (1960), Scientific Americ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