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경상감영 樂育齋의 교육과 문화 소통

Cultural Communication and Education of Nakyukjae(樂育齋) of Kyungsang-Gamnyeong

0

조회

0

다운로드

6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본고는 경상감영 직속의 교육기관인 낙육재에 대하여 설립과 제도, 교육 과정을 구명하고, 운영에 따른 문화 소통 전반을 살펴보는데 목적을 두고 연구한 것이다. 守令ㆍ方伯들은 17세기 이후 지방교육에 관심을 갖고 인재 양성을 도모했는데, 경상감사 趙泰億이 낙육재를 設立한 것은 磻溪 柳馨遠이 제기한 營學중시 교육관의 수용이었다. 경상감사는 儒生 15명을 考試로 선발하여 1년간 居齋하면서 講讀ㆍ製述하게 했는데, 道內 10여 곳에 學田을 두고 2,000餘兩 규모의 연간 예산을 편성했다는 점에서 齋生을 우대했음을 알 수 있다. 講讀에서는 載道 서책을 중시하고 製述에서는 純正, 雅健한 文體를 강조하였으며, 부정기적으로 庭揖禮, 鄕飮酒禮를 행한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상감사의 인재 양성의 관건은 교비확충으로 귀결되었다. 낙육재 설립 초 趙顯命 감사는 영남 儒林과 유대를 강화하면서 學田과 學規를 마련하였고, 19세기 초 尹光顔 감사는 講堂, 書庫, 寄宿舍의 증축과 도서 확보에 주력하였으며, 구한말의 趙夔夏, 李金憲永 감사는 特捐金을 내어 낙육재 발전에 일조하였다. 낙육재의 齋生은 설립 이후로 450여 명이 배출되었는데, 이들은 營學 選士의 명예를 누렸고, 居齋하면서 讀書를 통한 先賢과의 의식 소통이 있었다. 또 監司와 齋生 및 齋生 상호간의 교유를 통한 詩文을 文集에 남겼는데, 글을 보면 자긍심을 갖고 상대를 존중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로써 영남과 서울, 영남과 타도, 영남 지역 내의 문화 소통을 하는데 기여했음을 알 수 있다. 낙육재는 1896년에 경상도가 남북으로 나누어 질 때 晉州에서도 낙육재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일제의 입김으로 두 곳의 낙육재는 1910년 이전에 모두 철폐되었다. 낙육재가 철폐된 이후 大邱와 晉州에서는 교육 사업이 전개되거나 항일의식이 표출되기도 하였다.

Abstract

This study is to examine out the establishment and system, curriculum of the Nakyukjae, an educational organization under immediate control of Kyungsang-Gamnyeong(慶尙監營), and also to inquire into the cultural communication in general according to its operation. The number of Suryeong(守令)ㆍBangbek(方伯) had interested in regional education since 17th century, and planned to nurture human resources. The establishment of Nakyukjae by Jo Tae-Eok, Kyungsang-Gamsa(慶尙監司), was an acceptance of Ryu Hyung-Won's view of education which focused on Younghak(營學, school of Gamyoung). The Kyungsang-Gamsa selected 15 students of Confucianism by examination, had them stay in a boarding house, and had them read books and make a writing. We are aware that students of Nakyukjae got special treatment in that Kyungsang-Gamnyeong yearly budgeted about 2,000 Nyang (a unit of old Korean coinage) from 10 places of Hakjeon(學田) in the province. The key to nurture human resources of Kyungsang-Gamsa was an expansion of educational budget. In the beginning of establishing Nakyukje, Jo Hyeon-Myeong strengthened ties with Yeungnam Yurim(儒林), and arranged Hakjeon and drew up school regulations. In the early 19th century, Yun Kwang-An focused his efforts on the extension of a lecture hall, a library, a dormitory. Some of Gamasas stepped in with a large donation for the improvement of Nakyukjae in the latter era of the Chosun Dynasty. Nakyukjae had produced 450 students since it was established, who were covered themselves with honor for the selection of Nakyukjae and who had communication of consciousness with the previous great scholars by reading their books in the dormitory. Poetry and proses written by Gamsa and the students in their companionship contained in the collection of works, which showed that they had a pride and mutual respect for each other. It means that Nakyukjae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cultural communication between Yeungnam and Seoul, Yeungnam and other provinces, and within Yeungnam areas. When Kyungsang-Do was divided into South and North in 1896, Nakyukjae was established in Jinju, too. However, the two Nakyukjaes were closed down forcedly by Japan before 1910. After that, other educational works were unfolded and anti-Japanese consciousness was expressed in Daegu and Jinju.

참고문헌 (59)

  1. "慶尙監營 편, 嶺營事例 , 필사본, 1책", 계명대동산도서관, ~
  2. "慶尙監營 편,嶺營事例 , 필사본, 1책", 대구가톨릭대도서관 소장, ~
  3. 郭溟翰, "東湖遺稿 , 필사본, 3책", 계명대동산도서관 소장, ~
  4. "郭濎 편, 俛宇先生年譜 , 石版本, 2책", ~
  5. 金聖鐸, "霽山先生文集 , 목판본, 卷6-7 및 附錄, 3책", ~ (1893)
  6. "樂育齋 편, 綱目講語 , 필사본,1책", 대구시립중앙도서관 소장, ~ (1895)
  7. "樂育齋 편,齋錄 , 필사본, 1책", 대구시립중앙도서관 소장, ~
  8. "樂育齋 편,庭揖講論錄 , 필사본,1책", 대구시립중앙도서관 소장, ~ (1898)
  9. "樂育齋 편,訓辭 , 필사본, 1책", 대구시립중앙도서관 소장, ~
  10. 南廷瓚, "尼山集 , 목활자본,卷1, 1책", ~ (1955)
  11. 柳文奎, "「肅齋逸稿」, 屛湖世稿 , 석판본, 卷1, 1책", ~ (1937)
  12. 柳馨遠, "磻溪隨錄 , 목판본, 경상감영", ~
  13. "文苑彙集 , 필사본, 1책", 영남대학교도서관, ~
  14. 閔在南, "晦亭集 , 목활자본, 卷2 및 附錄, 2책", ~
  15. 申箕善, "陽園遺集", pp.210~ (2005), 민족문화추진회
  16. 영남문화연구원, "嶺營日記ㆍ嶺營狀啓謄錄", pp.114~ (2004),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17. 烏川鄭氏門中, "橫溪書堂記", 49~ (2006)
  18. 尹家黙, "南豊集 , 목판본,卷1, 1책", ~ (1920)
  19. 尹鳳五, "石門集 , 목판본, 卷3, 1책", ~
  20. 尹游, "平壤續志 , 목판본,1책", ~
  21. 尹仁錫, "一庵文集 , 목활자본", ~ (1908)
  22. 李光庭, "訥隱先生文集 , 목판본", ~ (1808)
  23. 李肯翊, "練藜室記述 , 연활자본, 別集 卷9, 1책", ~ (1912)
  24. 李沂, "海鶴遺書" (1955), 국사편찬위원회
  25. 李敦榮, "希顯堂聯句 , 필사본, 1책", 한국학중앙연구원, ~ (1841)
  26. 李東榦, "砧山文集 , 목판본, 卷1, 1책", ~ (1912)
  27. 李萬敷, "息山先生文集 , 목판본, 附錄, 1책", ~ (1813)
  28. 李萬敷, "息山先生續集 , 목판본 卷4, 1책", ~
  29. 李白, "分類補註李太白詩 , 甲寅字本, 卷24, 1책", 국립중앙도서관, ~
  30. 李柄運, "兢齋文集 , 목활자본, 卷1, 1책", ~ (1942)
  31. 李尙斗, "雙峯集 , 목활자본, 卷1 및 卷3, 2책", ~ (1917)
  32. 李楨輔, "寒松齋先生文集 , 목활자본, 卷1 및 卷3, 2책", ~ (1927)
  33. 李廷孝, "後松遺集 , 목활자본, 卷1, 1책", ~ (1921)
  34. 李鼎益, "甘華文集 , 목판본, 卷4, 1책", ~ (1912)
  35. 李滉, "退溪先生文集 , 목판본, 卷1 및 卷41, 2책", ~
  36. 張錫龍, "遊軒先生文集 , 목판본, 附錄, 1책", ~ (1925)
  37. 張志淵, "韋菴文稿", pp.301~ (1956), 국사편찬위원회
  38. 全奎煥, "小心亭自說 , 초고본, 1책", 계명대동산도서관, ~
  39. 全奎煥, "小心亭文集 , 목활자본, 卷1, 1책", ~ (1937)
  40. 鄭萬陽, "壎篪兩先生文集 , 목판본, 卷8, 1책", ~
  41. 鄭宗魯, "立齋先生文集 , 목판본, 卷9, 1책", ~
  42. 趙泰億, "謙齋集 , 필사본, 卷41, 1책",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43. 趙顯命, "歸鹿集 , 필사본, 卷19, 1책",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44. 蔡武植, "訥軒文集 , 石版本, 卷3, 1책", ~ (1964)
  45. 蔡憲植, "後潭文集 , 石版本, 卷5-6, 1책", ~ (1962)
  46. 崔興遠, "百弗庵先生文集 , 목판본, 卷2, 1책", ~
  47. 春秋館, "朝鮮王朝實錄 , 영인본" (1958), 국사편찬위원회
  48. 忠淸監營, "錦營事例 , 필사본, 1책", 국립중앙도서관, ~
  49. 河範運, "竹塢先生文集 , 목활자본, 卷3, 1책", ~ (1932)
  50. 咸鏡監營, "咸營都事例 , 필사본, 1책", 국립중앙도서관, ~
  51. 許元栻, "三元堂文集 , 목판본, 卷3, 1책", ~ (1915)
  52. 黃在瓚, "梧堂詩文集 , 석판본, 卷1, 1책", ~ (1963)
  53. "皇城新聞 (1907. 9. 26자), 해조신문 (1908. 3. 18자), 경남일보 (1910. 3. 29자)", ~
  54. 남권희, "경상감영 간행본과 낙육재 소장서책 분석, In 경상감영의 종합적 연구", pp.285~320 (2004), 경북대영남문화연구원
  55. 柳鐸一, "영남지방 출판문화 논고", pp.258~265 (2001), 세종출판사
  56. 張仁鎭, "嶺南 樂育齋 攷-특히 圖書館的 機能과 그 嚆矢로써", 圖書館報, 2, pp.89~114 (1978), 대구시립도서관
  57. 張仁鎭,, "慶尙監營의 樂育齋 敎育에 대하여", 漢文學硏究, 8, pp.177~198 (1992), 계명한문학회
  58. 趙婷化, "朝鮮朝後期 嶺南官板本에 관한 硏究", 박사, pp.1996
  59. 채휘균, "조선후기 영남 낙육재(樂育齋) 연구 -관련된 인물들의 행적을 중심으로", 교육철학, (36), pp.281~305 (2008), 한국교육철학회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8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