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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상주지역 사족의 동향

Trend of Sajok in Sangju in the 1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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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사족은 16세기 무렵부터 중앙과 지방에서 사회를 주도하는 계층으로 성장하였다. 중앙으로 진출한 사족은 사림으로서 향후 조선의 국정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성장하였으며, 지방에서는 재지사족으로서 향촌사회 운영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17세기가 되면 사족은 성리학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지배층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특히 영남에서는 퇴계의 사상을 이은 남인들이 재지적 기반을 바탕으로 중앙에서 활약하였다. 17세기 영남은 정치적으로 남인의 기반이자 사족들의 향촌지배체제가 구현된 조선사회의 단면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지금까지의 연구 역시 이를 바탕으로 퇴계의 사상과 이를 이은 남인들의 정치적 활동이나 사족들의 지방지배에 중점을 두고 이루어졌다. 그러나 두 방향에 대한 연구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못하고 개별적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연구 성과에 비해 조선시대 영남의 사족을 단편적으로 파악해왔다. 특히 퇴계학을 이은 남인의 관점에 매몰되는 경향이 강하다. 17세기 조선은 사족의 확대와 분화가 중앙에서는 동서분당이후 남인과 서인의 대립으로 이어지고, 지방에서는 지역 사족들의 성장과 갈등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중앙과 지방에서 유기적으로 발생하였다. 특히 상주는 이러한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지역이었다. 영남의 大邑으로 낙동강을 낀 교통로의 요지, 충청도와의 접경이라는 지리적 특징으로 인해 교류와 소통이 이루어지는 상주는 사족들의 형성과 성장에서도 지역적 특징이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났다. 본 연구에서는 상주의 지리적 특징을 바탕으로 상주 사족들의 형성과 성장, 변화의 과정을 통하여 17세기 중반까지 상주 사족의 특징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16세기 중반 이후부터 형성된 상주의 사족들은 契의 결성과 향안의 작성 등을 통해 성장하였고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의병활동을 통해 상주 사회에서 강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전후 복구를 위해 사설의료기관인 存愛院을 운영하였다. 또 지역의 공론 형성과 사족들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道南書院을 건립하였다. 이 과정에서 洛社稧 사족들을 중심으로 상주 사족들은 결집할 수 있었다. 17세기 초반 상주 사족 사회는 사족의 성장을 바탕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상주 사족 사회가 확대됨에 따라 사족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였다. 사족 사회의 확대에 따른 사족 간의 분화와 갈등은 당시 사족들의 활동 중심인 서원⋅서당의 운영에서 잘 드러난다. 도남서원과 玉成書院의 종향에 따른 논란은 상주 사족 갈등의 하나이다. 그러나 수선서당의 운영에서 보이는 사족들의 분화와 근암서원의 건립에서 나타나는 산양 사족과 상주 사족들 간의 갈등은 상주의 사족 사회가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상주 각 지역에서 성장한 사족들은 17세기 중반 이후 독자적인 공론을 주장 할 정도로 성장하고 17세기 후반 이후의 공론정치에서 상주가 영남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다양한 공론이 표출되는 계기가 되었다.

Abstract

Sajok(士族) in the Joseon Dynasty grew up to be leading class both at central and local society from around the 16th century. Sajok who advanced to the central government were developed into Sarim(士林), which dominates government policy and those who remained in local area took charge of the mainstay of local society as local Sajok. In the 17th century, Sajok firmly occupied dominating position in Joseon Dynasty based on Neo-Confucianism. Especially in Youngnam area, Nam-in(南人) who were successors of Toegye(退溪)’s thought worked for central government having the local power as their basis. Youngnam(嶺南) in 17th century was political foundation of Nam-in and most visible area for showing one aspect of Joseon society that Sajok’s local dominating system was embodied from. Previous studies also have focused on Nam-in’s political activities or Sajok’s domination on the local as successors of Toegye’s thought. But the studies on both tendencies have been conducted separately without having systemic connection. Therefore Youngnam Sajok in the Joseon Dynasty has been understood fragmentarily in comparison with the study result. In particular the studies have been tended to be partial toward Nam-in’s standpoint who had succeeded Toegye studies(退溪學). In the 17th century Joseon, expansion and seperation of Sajok led to confrontation between Nam-in and Seo-in(西人) after east-west political factions in the center, while having growth and conflicts of Sajok in the local area. And this situation happen organically both in the central and local. Especially Sangju was best place that shows this characteristic. As a major city of Youngnam, there were a lot of communication and exchange due to the geographic condition of being major transportation point and bordering on Chungcheong-do and Sangju’s this characteristic was reflected in the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local Sajok. This study tried to find out the characteristic of Sangju Sajok until the middle of 17th century by processing Sangju Sajok’s formation, development and change based on Sangju’s geographical characteristic. Sangju Sajok who had been formed since the middle of 16th century grew up by associating gye(契), making the Hyangan(鄕案), etc, and had great influence on Sangju society by righteous army(義兵) movement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1598(壬辰倭亂). After the war, they ran a private medical institution, Jonaewon(存愛院), for post-war reconstruction and built Do-nam Seowon(道南書院) for the formation of local public opinion and establishment of Sajok identity. In this process, Sangju Sajok could be united around Naksagye(洛社稧) Sajok. Sangju Sajok society was expanding due to the growth of Sajok in early 17th century. As Sangju Sajok society expanded, conflicts among Sajok arose. These conflicts were more evident in management of Seowon and Seodang(書堂) which were the core of Sajok’s activities. The controversy in the management of Do-nam Seowon and Ok-seong Seowon(玉成書院) was one of Sangju Sajok’ conflicts. However the expansion of Sangju Sajok society was revealed by Sajok’s separation in management of Su-seon Seodang(修善書堂) and conflict between Sanyang(山陽) Sajok and Sangju Sajok on establishing Gun-am Seowon(近岩書院). Sajok who grew up in each local area was grown enough to insist independent public opinion since the middle of 17th century, and unlike other region in Youngnam area, this enables Sangju to express various public opinion in politics after the late 170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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