錦溪 黃俊良의 官歷과 牧民 活動
Hwang Jun-ryang’s Official Career and Service as Local Gover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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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조선 중기의 관료였던 황준량의 관료 경력을 검토하고 특히 지방관 활동에 관하여 주목했다. 이를 위해 그의 문집인 『錦溪集』 외에 『退溪集』에 수록된 편지글 등을 활용하여 생애를 복원하고, 善治 守令으로 명성이 남게 된 까닭에 관해 검토했다. 문과에 급제한 후 황준량은 사림파가 정계에 다시 등장하던 시기에 주로 성균관의 하위직을 전전하면서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고향인 풍기는 주세붕이 처음으로 私學 교육기관인 서원을 세운 곳이고, 이황이 군수로 있으면서 서원을 발전시키던 곳이었다. 황준량은 정파를 초월하여 존경받던 이현로의 손녀사위로서 그를 매개로 주세붕이나 이황과 교유할 수 있었다. 황준량은 신녕 현감, 단양 군수, 성주 목사로서 수령직을 역임했다. 그 과정에 기민을 구제하고, 전임관의 부채를 해결하고, 학교를 진흥시키는 일을 잘 수행했다. 특히 단양 군수 때는 고을의 폐단을 국왕에게 간곡하게 상소하여 10년간의 세금을 면제받아 선치 수령이라는 명예를 얻었다. 사림파가 관심을 가졌던 서원 교육에 힘쓰고, 성주 목사 시절에는 이황이 편찬한 『주자서절요』를 편찬하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단양 군수 시절, 왕으로부터 면세의 혜택을 얻어낸 것은 대단한 일이었고, 단양 농민들의 삶은 크게 개선되었다. 그러나 선치 수령이란 명성은 황준량의 행정과정에서 얻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왕의 허락에서 온 것이었다. 당시 지방 행정수요의 상당 부분이 수취 업무와 관련된 것이었으므로 황준량은 ‘한가한’ 단양 시절을 보내면서 선치 수령이라는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셈이다. 결국, 선치 수령 황준량이라는 명성은 人治主義的인 질서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제도보다는 개개인의 덕성과 능력에 따라 상황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믿었고, 황준량의 예는 그런 믿음을 강화하는 근거 중의 하나였다. 그런 면에서 선정을 기대하는 농민들에게 황준량은 오래도록 선치 수령의 상징으로 남을 수 있었다.
Abstract
Hwang Jun-ryang(黃俊良) was a government official in the middle Choseon dynasty. This article focuses on his official career and his service as a local governor. His life is restored in this article by examining Geumgyejip(錦溪集), a collection of his literary works, besides letters in Toegyejip(退溪集). The way of his wise government is also scrutinized in the article. Passing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Hwang Jun-ryang began his official career working at various low-ranking official positions in Seonggyungwan(成均館) at the time sarim faction reentered the political world. In his hometown, Punggi(豐基), Ju Se-bung(周世鵬) established the first Seowon(書院), a private school, and Yi Hwang(李滉) developed Seowon during his service as a local governor, gunsu. As Hwang Jun-ryang was a grandson-in-law of Yi Hyeon-ro(李賢老), who was revered by all the factions, he could keep company with Ju Se-bung or Yi Hwang. He filled various local governor positions, such as Shinnyeong hyeongam, Danyang gunsu, Seongju moksa. During the service, he led relief efforts for the starved, solved his former governor's liabilities, and developed education sincerely. Especially, serving as a local governor of Danyang, he proposed tax cut to the king and successfully provided the people with the tax exemption benefit for ten years. This gave him the honorable name, seonchi suryeong(善治守令), that is, a wise government local governor. He exerted every effort in education in Sewon(書院) which was sarim faction's great concern and as Seongju moksa, he finished compiling Jujaseojeolyo(朱子書節要); The Abbreviated Essence of Master Zhu Xi’s Letters which Yi Hwang had begun to compile. It was a great achievement for him to get the tax exemption from the king as Danyang gunsu. Thanks to the tax cut the lives of people in Danyang improved. His fame as a wise governor, however, was not acquired because of his administration process but because of the king's permission for the exemption. At that time as the local governor's administrative work was mostly concerned with collecting products, he just got the fame while leading a leisurely life in Danyang. After all, his fame as a wise governor was made in the social atmosphere of governing by a person. At that time they believed that things could be completely changed not by the system but by the governor's moral virtue and ability. That's why Hwang Jun-ryang was remembered as a symbol of wise governor by the people who looked forward to the beneficent gover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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