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深齋 曺兢燮의 北征 기행에 대한 고찰

A Study on the Journey to 北征 by Shim Jae Jo Geung-se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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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철학

초록

본고는 국권침탈기 영남에서 활동했던 深齋 曺兢燮(1873-1933)이 1915년 한양과 개성, 평양을 거쳐 중국 안동현을 방문하고 돌아온 여정에 대해 그가 남긴 시문과 일기자료를 통해 면밀히 고찰하고 그 여정이 갖는 의미를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조긍섭은 1914년 부친의 3년상을 마친 뒤 경북 정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일제에 협력하지 않고 은둔해 생활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깝게 지내던 壽峯 文永樸(1880-1930)과 함께 다음해인 1915년 6월 중국 안동현을 방문하게 된다. 이 여정에서 그는 각 방문지마다 자신의 소회를 시로 남겼다. 또한 일기에 매일 방문한 곳과 여정에 대한 기록을 짤막한 메모형식으로 남겨 두었다. 때문에 문집의 작품과 일기의 내용을 통해 당시 여정의 상세한 경로와 그 당시 조긍섭의 심회를 매우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 조긍섭은 한양과 개성 평양을 방문하며 망국의 현실에 대한 비분한 심정을 시로 읊었다. 그러한 悲感을 안고 중국 안동현으로 향했던 것이다. 당시 안동현에 대한 기록은 상세하지 않다. 안동현으로 향하며 배에 오를 당시와 안동현에 도착했을 당시까지는 시를 남겼지만 안동현에서 하루 동안 머물며 어디를 방문했고 누구를 만났는지, 그곳에서 어떤 심회가 들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기차로 안동현에 들어간 뒤 다음 날 다시 의주에서 배를 타고 안동으로 이동하는 등 당시의 여정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조긍섭이 안동현으로 떠났던 1915년 당시 평소 그와 교류했던 이들 중 상당수가 망명을 떠나 안동현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이 때 당시 안동현으로 향했던 목적은 평소 교류하던 사람을 만나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대했던 만남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으로 발길을 돌린 조긍섭은 개성에서 약 4일 동안 머물며 개성의 여러 곳을 방문하고 시를 남겼다. 그리고 개성에서 남긴 작품들은 비감으로 가득했던 앞의 작품들과 달리 기대와 포부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안동현의 방문은 목적을 이루지 못했지만 다시 돌아오는 길에 개성에서 왕성순과의 만남이 망국의 상황에서 자신이 고향 땅에 머물며 훗날을 도모하겠다는 다짐의 계기로 작용했던 것이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meaning of Shimjae Jo Gung-seop, who was active in Yeongnam during the secession of national sovereignty, through the poems and diary materials he left behind, and reveal the meaning of his journey, through the poems and diary materials he left behind, on the journey back from visiting Andong-hyeon in China through Hanyang, Gaeseong, and Pyongyang in 1915. have. Jo Geung-seop moved to Jeongsan, Gyeongsangbuk-do in 1914 after his father's three-year mourning was over. He was chosen to live in seclusion without cooperating with the Japanese. And in June 1915, the following year, he visited Andong County, China with Subong Moon Young-bak, who was close there. On this journey, he left a poem about his impressions at each of the places he visited. He also kept in his diary the form of short notes about places he visited and his itineraries each day. Therefore, through the works of the collection of works and the contents of the diary, the detailed route of the journey at that time and the thoughts of Jo Geung-seop at that time can be examined in great detail. While visiting Hanyang and Kaesong and Pyongyang, Jo Geung-seop wrote a poem about his heartbreaking feelings about the reality of exile. With such love, he moved to Andong County, China. At that time, the records of Andong-hyeon are not detailed. He wrote poems when he boarded the boat for Andong and the time he arrived in Andong, but he did not record where he visited, whom he met, and what hearings were heard there during his one-day stay in Andong. Perhaps this was a choice to avoid Japanese surveillance at the time. This is because most of those who had exchanged with Shim Jae at the time, who had fled exile and settled in Andong-hyeon, were subject to Japanese surveillance. Then, returning to his hometown, Jo Geung-seop stayed in Kaesong for about four days, visited various places in Gaeseong, and left behind poems. And Dong-hyeon's visit served as an opportunity for Jo Geung-seop, who was looking for a way, to make a decision to pursue a future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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