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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노백린 연구의 새로운 지평선 열기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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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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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국내 활동, "목차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노백린의 생애와 독립운동을 성장과정 그리고 순국 등 5부로 구성하여 서술하고 책의 말미에 노백린의 장남 노경선이 대학노트에 필사한 3종의 전기를 부록으로 덧붙였다"
  2. "이 책의 1-4부는 대략 50여 쪽씩 서술분량을 안배하고 있는 반면 제5부 순국은 그 서술의 분량도 얼마 되지 않고 내용도 제4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크게 4부로 구성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또 부록에 수록된 는 모두 노경선이 서술한 탓에 그 내용도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지만 노백린에 대한 기초 자료이므로 향후 연구자들에게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3. "이 책은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각종 자료와 사진을 광범위하게 발굴 수집하여 노백린의 생애와 독립운동을 새롭게 밝혔다 그 중에서도 윌로우스 비행사양성소의 설립 운영에서 폐쇄하기까지 과정을 상세하게 고찰한 부분이 돋보인다 지금까지 비행가양성소는 노백린의 발의에 의해 시작되어 한인 농장주 김종림 등 미주 한인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알려져 왔으나 그 구체적인 내용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에 의하면 1920년 1월부터 노백린이 윌로우스 한인들과 의논하여 2월 20일 군단설립을 정식으로 발기하고 7월 26일부터 30여 명의 비행사를 양성하였으며 훈련생들은 농장에서 일하고 받은 임금으로 훈련비를 자비로 부담하면서 훈련에 임했다는 것이다"
  4. "또한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김종림이 41명으로 구성된 비행사양성사 라는 조직을 만들어 그 구성원 들로 하여금 매월 10달러를 기부하게 하였는데 설립 당시 이에 반대하던 현지 지역사회의 서양인 회사가 100달러 중국인들이 20달러를 희사하는 등 외국인들까지 비행가양성소를 적극적으로 후원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리고 1920년 11월 추수기의 대홍수로 타격을 입은 데다가 3 1운동 민족대표 박희도의 동생인 박희성이 1921년 4월 10일 비행기사고를 당한 뒤 이를 수습하고 비행기를 수리하느라 비행사양성소 운영이 극도로 곤란해진 상황에서 김종림이 국민회 북미지회 를 보내 지원을 요청한 사실도 드러나게 되었다"
  5. The Pacific Times, "다음으로 노백린이 박용만 조용하 등과 함께 독립운동의 한 방편으로 를 발간하였으며 창간 당시 사장 겸 주필로 활약했다는 점도 이 책의 필자들이 사료를 꼼꼼히 검토한 끝에 얻어낸 귀중한 성과이다 1918년 11월부터 1926년 3월까지 발간된 와 더불어 하와이 한인 사회를 대표하는 2대 언론지로서 대조선독립단의 기관지가 되었는데 그 동안 박용만 또는 조용하 조소앙의 형 가 발간한 것으로 여겨져 왔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조용하가 노백린의 후임으로 의 사장 겸 주필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토대로 오류를 바로잡았다"
  6. 예컨대, "이처럼 새로운 사료 발굴과 병행하여 관련자료를 면밀히 분석하고 일일이 대조하는 노고를 기울인 끝에 기존의 잘못 알려진 사실들을 올바르게 비정한 부분은 이 책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가 육군무관학교 교관에서 부위로 연성학교로 전직해서 교관 겸 교성대장으로 각각 진급한 날짜 노백린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무총장과 교통총장을 겸임한 날짜 등 동일한 사실에 대해서 관련 기록이 서로 다를 경우 좀더 신빙성이 있는 자료를 토대로 수정을 가했던 것이다 또한 노백린이 일본에서 귀국한지 2년만인 1902년 5월에야 비로소 고향을 방문한 점에 대해 시기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기존 사료에 의문을 제기한 점에서도 노백린의 생애를 바로보려는 필자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 결과 노백린의 생애를 올바로 조감할 수 있는 연보가 정확하게 작성되기에 이르렀다"
  7. "아울러 비행가양성소를 비롯해서 노백린에 관련된 사진들을 풍부하게 수록하고 있는 것도 이 책의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특히 비행사 양성과정에서 비행기 추락으로 중상을 입었던 박희성 묘비 사진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는데 이를 통해 1937년 1월 15일 박희성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함으로써 사고 이후 분명치 않았던 사망 여부에 관한 논의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8. "마지막으로 노백린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거나 활동했던 사건과 운동에 관한 기존의 연구성과를 폭넓게 반영해서 그의 생애와 독립운동을 일목요연하게 재정리한 점도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으로 들 수 있다 그의 성장과정과 사관 양성 활동을 시대적 배경과 연관해서 입체적으로 정리하거나 계몽운동의 틀 속에서 그가 벌인 활동의 역사적 의의를 평가하였으며 군무총장 혹은 국무총리로서 독립전쟁을 준비한 과정과 혼란한 임시정부를 수습하려 했던 그의 노력을 구체적으로 서술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막연했던 노백린의 생애와 독립운동을 전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게 되었다"
  9. "마지막으로 노백린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거나 활동했던 사건과 운동에 관한 기존의 연구성과를 폭넓게 반영해서 그의 생애와 독립운동을 일목요연하게 재정리한 점도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으로 들 수 있다 그의 성장과정과 사관 양성 활동을 시대적 배경과 연관해서 입체적으로 정리하거나 계몽운동의 틀 속에서 그가 벌인 활동의 역사적 의의를 평가하였으며 군무총장 혹은 국무총리로서 독립전쟁을 준비한 과정과 혼란한 임시정부를 수습하려 했던 그의 노력을 구체적으로 서술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막연했던 노백린의 생애와 독립운동을 전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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