圃隱 鄭夢周의 交遊와 詩的 表現
A Study on the Aspects of Poeun Jeong Mong-ju’s Social Intercourse in his Po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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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에서는 포은의 시를 통해 보여준 교유관계를 살펴보고, 인물들에 따라 어떠한 태도를 보여 주었는가를 살펴보았다. 먼저 포은은 고려 후기의 대표적 사대부 문인들과 교유하였는데, 모두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從軍과 使行 등으로 遠行이 빈번하였던 포은은 항상 동료 문인들에 대한 그리움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였다. 두 번째는 외교관으로서 보여준 면모이다. 포은은 수차례 明과 日本에 使行을 다녀왔으며, 접빈사로서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포은은 명 황제의 덕화를 칭송하고, 명과 고려가 하나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明의 황제를 향한 의례적인 칭송이 아닌 포은의 진심이고 현실이었다. 고려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 명의 후원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포은은 성리학을 학습한 儒者였지만 山寺에서 수학하기도 하였으며, 불교에 대한 이해도 높은 수준이었다. 따라서 승려들과 친밀하게 교유하였으며, 불교에 대해서도 상당히 포용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때로는 승려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山寺를 직접 찾기도 하였고, 시로서 불가의 승려들과 소통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포은의 풍모는 결국 고려의 사직을 보호하고 부흥하려는 절의파의 구심점이 될 수 있었으며, 조선에 들어서도 끊임없이 추숭되었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Abstract
This study aims to investigate several aspects of Poeun Jeong Mongju‘s social intercourse having an influence on his poems. First, Poeun was associated with Sadaebu(士大夫) in late Goryeo whom he had deep affection for. Poeun revealed his attachment rather directly through his poems because he was accompanying the army to the war or stayed in other countries as diplomatic envoy, for which he had to leave them. Next aspect of his social intercourse is related to his job as a diplomat. Jeong Mongju visited China and Japan several times as a diplomatic envoy. After coming back, he took charge of reception of guests from China and Japan. While doing this, Poeun praised the greatness of the emperor of Ming Dynasty and emphasized that Josun and Ming was one. It was not a courtesy praise but a cordial expression because supports from Ming was necessary for the stability of Goryeo Dynasty. Finally, he was also associated with Buddist monks. He learned Neo-Confucianism but studied in temples having a high understanding of Buddism. Thus, he was close to Buddist monks and had attitude of embracing Buddism. Poeun sometimes visited temples in mountains to talk with Buddist monks and communicated with them through poems. These aspects of Poeun's social intercourse can be believed to be the drive for him to be a center of group of Jeoleui which worked for Goryeo's revival and the reason of making him respected until Josun Dynasty continuous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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