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의 ‘사난(四難)’ 창의와 포은정신(圃隱精神)-임고서원(臨皐書院)의 포은 숭모와 관련하여-
Armies Raised in the Cause of Justice for Four Wars and the Poeun Spirit in Yeongcheon -With regard to the worship of Poeun at Imgo Seo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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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천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탄생지(誕生地)이다. 정몽주는 고려말 풍전등화와 같은 왕조를 위해 목숨을 바침으로써 영원한 충절의 상징이 되었다. 그는 그를 죽인 자들이 세운 조선왕조가 개창된 후 얼마 되지 않아 복권되었고, 이어 문묘에까지 배향됨으로써 만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본 논문은 영천에서 전후 네 차례에 걸쳐 일어난 의병의 창의 상황을 살피고, 그 상황을 모아 하나의 책으로 엮은 『영양사난창의록(永陽四難倡義錄)』의 편찬 과정과 의미를 살핀 글이다. 이는 영천에서 정몽주를 숭모하여 그 정신을 계승하고 실천한 모습을 역사 속에서 찾고 증명하는 일이다. 조선에 서원이 세워지기 시작하던 초창기에 영천에는 이황의 문인들이 주도하여 정몽주를 모시는 임고서원을 세웠다. 이황의 관심과 지원 속에 창건된 임고서원은 두 번째로 사액서원이 되면서 그 명성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몽주의 주된 향사처로서의 지위도 아울러 가지게 되었다. 정몽주와 임고서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영천인들은 국가가 위기에 처하였을 때, 평소 체득한 ‘포은정신’으로 떨쳐 일어나 충의를 실천하였다. 임진의병, 정묘의병, 병자의병, 무신의병 등 전후 4차례에 걸쳐 의병을 일으켰다. 참여한 총 인원이 확인되는 자만 650여명에 달하였다. 후일 자료의 인멸을 안타까워한 영천인들은 『영양사난창의록(永陽四難倡義錄)』의 편찬을 통해 길이 기억하고자 하였다. 여기서 정몽주의 ‘의(義)’와 영천의병의 ‘의’를 동일시하였고, 나아가 창의록 편찬의 ‘의’까지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포은정신’의 계승을 천명한 창의록의 편찬은 영천을 넘어 영남, 나아가 조선의 행운이 되는 것임을 드러내어 밝혔다.
Abstract
Yeongcheon is the birthplace of Poeun(圃隱) Jeong Mong-ju. This paper presents an investigation into the publication process and significance of Yeongyangsananchanguirok((永陽四難倡義錄)), which examined and put together the situations in which an army was raised four times for the cause of justice in Yeongcheon. It is an attempt to find and demonstrate in history the ways that the people of Yeongcheon respected Jeong Mong-ju; thus, inherited and practiced his spirit. In the early days of Seowons in Joseon, the literary figures under Lee Hwang took the lead in building Imgo Seowon(臨皐書院) to enshrine Jeong Mong-ju in Yeongcheon. Built with Lee Hwang's interest and support, Imgo Seowon became the second Sa-aek Seowon(賜額書院); and thus, solidified its fame. It also obtained the status of a major shrine for Jeong Mong-ju. Taking pride in Poeun and Imgo Seowon, the people of Yeongcheon rose high in the spirit of Poeun, which they had learned and practiced faithfully in case of national crisis. They raised an army in the cause of justice four times after wars broke out, which were called Imjin, Jeongmyo, Byeongja, and Musin Uibyeong(義兵). The confirmed number of people who participated was 650. Feeling worried about the potential destruction of their data in later times, the people of Yeongcheon decided to publish Yeongyangsananchanguirok to keep the memories for many years to come. In this book, they identified the righteousness of Jeong Mong-ju with that of Yeongcheon Uibyeong and furthered its publication. They also demonstrated that the publication of the book, which declared the inheritance of the Poeun spirit, would bring good luck to Yeongnam and also Joseon beyond Yeongc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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