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진의 국립극장 기획과 <원술랑>
A study on the Planning of the Yoo Chi-Jin's National Theatre and <wonsull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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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국립극장 개관 공연인 <원술랑> 공연에 대한 당시 평가는 대단한 흥행을 기록했다는 점에 집중되었다. 흥행극단이 아닌 국립극장 개관공연의 성공여부를 왜 흥행 성적으로 판단하는지, 국립극장 기획을 둘러싼 정치논리와 유치진의 논리를 통해 <원술랑>과 국립극장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한다. 무대예술의 발전을 위해 극장을 가져야 한다는 연극인들의 요구는 국립극장으로 실현되는 듯 했다. 유치진은 강권이나 영리의 대상이 아닌, 예술가와 예술을 위한 극장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으나 실상 국립극장은 설립 과정에서부터 정부의 강권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체제였으며, 예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부의 논리와, 그 논리를 수용하면서 오래도록 숙원했던 극단을 가지려는 유치진의 욕망이 결합하면서 등장하게 된다. <원술랑>에서 유치진은 국가를 위해 개인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외세인 당을 몰아내고 민족통일을 이룬 신라 화랑을 통해, 외세를 몰아내고 ‘일민’을 이루려는 당대 국가의 지향 이념을 드러낸다. 국립극장 개관 공연이지만 <원술랑>은 연극의 공공성보다 정치적 역할을 요구받았으며, 그 결과 많은 관객들을 획득하고 그들에게 정치이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다. 국립극장은 모든 연극인들의 숙원이었지만 유치진이 이를 사유화하고 있다는 혐의가 짙다. 유치진 개인의 인맥으로 전속극단을 구성하고, 자신이 극작과 연출을 주로 하는 시스템을 반복한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연극계 전체를 아우르는 것도, 연극의 공공성을 실현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전쟁기 극장장이 서항석으로 교체되면서 유치진의 체제는 부정되고, 이후 국립극장 무용론 같은 많은 문제를 낳는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Abstract
<元述郞>は、国立劇場の開館公演だ。しかし、当時の<元述郞>公演が注目されたのは大変な興行を記録したという点だった。国立劇場の開館記念公演がなぜ興行成績で評価されるのか、これらの疑問を解決するためには、国立劇場が設立された背景と、国立劇長の劇場長だった柳致眞の企画から国立劇場の性格を究明する必要がある。 国立劇場は、政府の強権と柳致眞の利権が会って形成された。民族芸術のためという名分を出すが、その裏には、芸術を政治的に利用しようとする政府の意図と、自分の念願だった劇団を持とうとする柳致眞の欲望が存在していた。<元述郞>は、国家のために個人が存在するという話をする。外勢を追い出して、完全な民族統一を成し遂げた新羅を介して、外勢を追い出して "一民"を成し遂げようとする当時の国の指向理念を表わした。 国立劇場は柳致眞だけでなく、すべての演劇人たちの願いであったが柳致眞がこれを私有化している疑いが濃厚だ。柳致眞の個人の人脈で専属劇団を構成して、自分が劇作と演出を主とするシステムを繰り返す。しかし、この方法では、演劇界全体を網羅することも、演劇の公共性を実現することも困難であった。だから、その後に劇場長が徐恒錫に変わり柳致眞のシステムは否定され、多くの議論と国立劇場の無用論のような問題を生み出すきっかけを提供することにな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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