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릉의 조성 및 그 문헌
Construction of Royal Mausoleums during the Joseon dynasty period and related text materi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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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왕릉은 왕과 왕후의 사후 공간이자 왕조를 수호하는 조상신의 신성한 영역이다. 또한 그 후대 왕들에게는 효로서 그 ‘친(親)’을 다하면서 혈통 및 지위 계승의 영속성을 표하는 성역의 장소가 된다. 특히 조선왕조에서는 왕릉 조성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를 정형화된 의례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기에 이르렀다.조선왕조는 흉례(凶禮)에 따라 왕과 왕후의 훙(薨)한 순간[初終]부터 성복(成服)과 발인, 견전, 안릉, 우제, 졸곡, 소상, 대상, 담제에 이르기까지 총 27개월에 걸쳐 그 의례를 행하였고, 그 속에서 왕릉 택지와 택일 등 왕릉의 조성 과정이 조정되었다. 그 전체 구조를 보면, 풍수의 형국에 따라 택지를 하면서 금천교를 만들었고 이어 왕릉의 영역을 표시하는 홍살문을 세웠다. 제향의 공간으로서 배위와 참도로 이어지는 정자각과 그 우측으로 수복청을 두었고, 또한 비각을 세우고 소전대와 감이 만들어졌다. 다음은 제향의 공간을 넘어 능침 공간으로 가는 곳으로 둔덕이 인공적으로 조영되었고, 무인석과 문인석,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호, 석양, 곡담이 능침의 전후좌우에 놓여졌다. 그리고 봉분을 둘러 난간석과 병풍석이 만들어졌고, 봉분 밑으로는 석실 혹은 회격으로 처리한 능실을 두었다. 이러한 능역에는 잡초가 침범하거나 나무들이 자라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으며 정기적으로 왕릉을 관리하기 위해 관원이 파견되기도 하였다. 또한 계승군주가 의례를 갖추어 전왕의 국장을 치루고 그 능을 조성하여 왕조의 성역이자 역사의 유산으로 남기려는 의지 속에서 역대왕의 실록에 그 과정이 상세하게 기록되었고 또 이를 다시 종합 정리하여 의궤 그리고 능지를 편찬하였던 것이다.
Abstract
Construction of Royal Mausoleums during the Joseon dynasty period and related text materials / Lee Bum J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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